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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그럴싸하다.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현 대표가 정면충돌했고, 홍준표 의원이 탈당과 분당을 거론했으니 일부 언론이 ‘빅뱅’ 가능성을 점치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홍준표 의원의 말에는 무게감이 없다. 파괴력이 크지 않은 평의원의 개별 의견일뿐더러 그가 “탈당하고 나가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응할 까닭도 없고, 그럴 사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준표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한다는 세간의 말에 기대면 그의 말은 ‘공격용’보다는 ‘전시용’에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기운 서울시 당원과 의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선명도 지수를 올렸다는 해석 말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현 대표가 험구를 주고받은 양상 또한 그리 중요치 않다. 지금까지 있어왔고 앞으로 있을 공방의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충돌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전ㆍ현 대표의 충돌은 서막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주목할 건 정면충돌의 양상이 아니라 그 내용이다. 정면충돌 양상에도 불구하고 ‘빅뱅’ 가능성에 쉬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책임지라고 했다. “당이 신뢰를 잃는 것은 (정몽준 대표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 된다. 이명박계가 세종시 원안 고수 당론을 변경하는 사태가 발생하면(당장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그 책임을 정몽준 대표에게 묻겠다는 뜻이 된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정몽준 대표가 자진사퇴하지 않는 한, 박근혜계가 정몽준 대표를 자리에서 끌어내릴 정도로 세가 불어나지 않는 한 박근혜 전 대표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하나 밖에 없다. 7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각을 세우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전당대회를 상정하고 있다면 사라진다. 탈당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여지가 사라진다. 전당대회에서 이기든 지든 그것은 당심을 반영한 결과이니까, 또 정상적인 당 의사결정과정의 산물이니까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입만 열면 절차와 원칙을 읊조리는 박근혜 전 대표로선 더더욱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과정이다. 이명박계가 당론 변경을 끌어내기 위한 사전작업을 ‘정상’의 범주에서 전개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방법을 모색하는지가 관건이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설득의 틀 내에 머문다면 몰라도 그 범주를 뛰어넘어 박근혜계의 ‘파괴’를 시도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박근혜 전 대표로선 ‘방어권’ 확보 차원에서 수단과 방법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이런 경우는 말 그대로 가정에 머물고 있다. 정몽준 대표가 그러지 않았는가. “당내 누구든지 찬반 의견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고, “당 대표라고 해서 찬성 의견을 말하면 안 된다고 하면 지나친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말을 풀이하면 '왜 말도 못하게 하느냐'는 푸념이다.

아직까지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계의 상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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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겠다고 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랬다. 자신은 잠시 떠나는 것 뿐이라고, 금배지를 단 뒤에 민주당과 다시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외사랑’이라고 하나? 상대방 마음이 어떻든 일편단심 민들레를 피우려 하니 그렇게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근데 예뻐 보이지 않는다. ‘외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으로 보인다. ‘멜로’가 아니라 ‘호러’로 비쳐진다.

상대방, 즉 민주당의 사정이 여유롭지가 않다. 정동영 전 의장의 ‘연서’를 정독할 계제가 아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깨진다. 만에 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돈 수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민주당의 현상태는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당 의사와는 무관하게 환골탈태 압박에 내몰린다. ‘탈노(또는 극노)’ 주문이 들어오고 ‘진보개혁성 강화’ 요구가 빗발친다.

이게 문제다. 바로 이것이 정동영 전 의장의 복귀 전선의 성격을 바꿔버린다. 정동영 대 정세균 대결구도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정동영 색깔을 앞전으로 끌어낸다. 


‘탈노’와 ‘정동영 복귀’는 호응하지 않는다. 정동영 전 의장이 노무현 정부의 2인자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본인이 뭐라 하건 그건 중요치 않다. 자신은 결코 친노직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해도, 단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잘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노무현의 굴레’를 계속 쓰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읍소해도 울림은 없다. 2007년 대선에서, 그리고 2008년 총선에서 그를 대했던 국민의 시선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노무현’ 극복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눈 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더 치켜 올라갈지 모른다. 정동영 전 의장을 바라보는 국민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갈지 모른다. ‘진보개혁성 강화’와 ‘정동영 복귀’는 호응하지 않는다. 정동영 전 의장이 당 결정에 불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본인이 뭐라 하건 그건 중요치 않다. 자신은 탈당할 생각이 없었노라고 주장해도, 당 지도부의 기득권 지키기에 희생된 것일 뿐이라고 강변해도 울림은 없다. 그런 울림을 자아내기에는 정동영 전 의장의 전주덕진 출마 명분이 너무 약하다. 민심을 거스르고 일신의 안위를 좇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이겨야 한다. 정동영 전 의장이 아니라 민주당이 4.29재보선에서 완승을 거둬야 한다. 그래야 ‘노무현 쇼크’를 완화할 수 있고, 그래야 민주당 환골탈태 요구를 억누를 수 있고, 그래야 정세균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정세균 체제가 유지돼야만 정동영 복귀문제를 정동영 대 정세균 대결 프레임에 가둘 수 있고, 한숨 돌린 민주당 주류의 ‘여유(?)’를 기대할 수 있다.

근데 어쩌랴. 정동영 전 의장의 무소속 출마 강행으로 민주당의 완승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 전략지역 두 곳 가운데 한 곳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정동영 전 의장 스스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사진=민주당 탈당 선언을 하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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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도부가 합창을 했다. '탈당 의원 복당 불가'를 선언했다.

강재섭 대표는 탈당 출마자의 복당 불가를 명시한 당헌·당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고, 윤리위원회는 무소속 또는 다른 당 후보를 지원하는 건 해당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방호 사무총장과 안상수 원내대표는 탈당 출마자의 복당은 절대 안 된다고 거듭 확인했다. 모두가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들이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합창을 한 배경이 뭘까? 대다수가 말한다. 박근혜(계)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당연한 분석 같다. 대구에 내려간 박근혜 전 대표가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니고 있고, 그의 발언과 발걸음이 음으로 양으로 박근혜계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멀쩡히 구경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제어해야 하고, 그러려면 공격해야 한다.

박근혜(계) 바람은 광풍일까?

근데 이상하다. 분석이 너무 명쾌해서 그런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이 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계) 바람이 부는 게 사실이라면 그 기원은 두 개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중적 인기가 하나이고, 한나라당의 무원칙 공천에 대한 유권자의 반발심리가 다른 하나다. 박근혜(계) 바람은 이 두 요소가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상승기류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 지도부는 바람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역풍을 맞게 돼 있다. 탈당 출마자에 대해 복당 불가를 선언한 것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똥고집 행각'으로 유권자에게 비쳐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또 박근혜 전 대표를 직접 공격한 것은 무원칙 공천의 최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로 간주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얘기가 이 대목에서 나온다. 한나라당이 이 점을 몰랐을 리 없다. 아주 기초적인 이런 사정을 모른 채 헛다리를 짚었을 리 없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박근혜 전 대표를 직접 공격하고 나선 배경이 뭘까?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박근혜(계) 바람이 일고 있다는 대전제가 잘못된 것이라면, 아니 한나라당 지도부가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나라당 안에서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바람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거세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오고 있다.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지만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하는 후보는 두세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모두 영남권이다. 나머지 후보는 잘 해야 한나라당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정도다.

바람엔 맞바람으로

바로 이게 포인트다. 한나라당 지도부 또한 판세를 이렇게 보고 있다면 두 갈래 대응법을 모색하는 건 오히려 자연현상에 가깝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영남권의 '사랑'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감정의 농도를 줄이는 게 상책이다. 방법은 번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감정, 즉 한나라당에 대한 전략적 투표성향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복당 불가' 주장은 아주 유용한 도구다. '복당 불가'의 톤이 올라갈수록 박근혜계 후보와 한나라당의 거리는 멀어지고 박근혜계 후보의 당선은 최소화된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사랑'이 비교적 덜한 수도권에선 정면 공격을 하는 게 낫다. '원칙을 따르는 정치지도자'의 이미지에 덧칠을 함으로써 수도권에 출마한 박근혜계 후보들을 이전투구의 싸움꾼으로 몰아가는 게 낫다. 강재섭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의 이율배반을 강조한 건 그래서 유용하다. 이렇게 묘사해야 박근혜 전 대표는 무원칙한 이중 플레이어가 되고 박근혜계 후보의 표 잠식 현상은 극소화된다.

두고 볼 일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박근혜 때리기'가 이런 계산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도 그건 '최선의 대응'이지 '최선의 결과'는 아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최선의 대응'을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맞은편이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다. 당장 박근혜 전 대표 측근들이 역공을 퍼붓고 있다. 탈당 후 출마는 해당행위라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비난에 대해 "당헌·당규도 지키지 않고 공천을 잘못한" 게 해당행위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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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은 대체로 일치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불공정 공천 경고’ 발언을 두고 언론과 정치권 모두 압박성 발언으로 해석한다.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 공천을 앞두고 자파의 지분을 최대한 챙기기 위해 공세를 펴는 것이라고 한다.

최후통첩성 발언이라고도 한다.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의 공천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분당에 준하는 탈당을 감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전 대표가 ‘겨누는 칼’을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박근혜, 칼을 겨누긴 했는데…

그럼 어떨까? 과녁이 된 이명박계는 무서워할까? 박근혜 전 대표가 ‘겨누는 칼’을 ‘찌르는 칼’로 용도변경할까봐 벌벌 떨까? 그래서 최후통첩을 수용할까?

관건은 용도변경 가능성이다. 이명박계가 박근혜 전 대표의 탈당을 ‘있을지도 모를 사태’로 바라본다면 한 발 물러설 공산이 크다. 총선 전이든 후이든 박근혜계가 떨어져나가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몰골이 처참해진다. 정부는 안정적 국정운영을 할 수 없고 한나라당은 야당의 등쌀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탈당이 ‘가능하지 않다’고 확신한다면 태도는 달라진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고를 가슴에 담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 공천갈등을 진단하는 잣대를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의지가 아니라 처지를 우선 살펴야 한다.

그닥 좋지 않다. 오갈 데가 별로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탈당을 감행할 경우 반드시 이뤄야 하는 성과는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차기를 노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이어갈 수 있다. 자유선진당에 합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이회창 총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여럿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럴 바에는 한나라당에 남아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살리는 게 낫다.

헌데 쉽지가 않다. 때를 놓쳤다. 박근혜계가 공천 데드라인으로 주장했던 2월말은 이미 과거가 돼 버렸다. 영남권 공천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3번 연거푸 심사가 연기된 상태다. 자파 인사들을 이끌고 탈당해 정당을 창당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비례대표를 얻을 수 없다.

같이 보따리를 쌀 인사가 몇 명이 될지도 확신할 수 없다. 선택의 기로에선 대개가 흔들리는 법이다. 더구나 집권여당 프리미엄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진폭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설령 여러 인사가 같이 보따리를 싼다 해도 당선을 보장할 수 없다. 어차피 탈당 대열에 합류하는 인사의 상당수는 공천 탈락자가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공천 불복자가 된다. 이런 인사들을 유권자가 곱게 봐준다는 보장이 없다.

어찌어찌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다 해도 장기적으로 득 될 게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감은 유지되겠지만 그렇다고 위상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오히려 이회창 총재처럼 특정지역 정파의 수장으로 격하될 소지가 다분하다.

진퇴유곡…살아남는 게 목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처지가 이렇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형국이다. 어쩔 수 없다. 처지가 진퇴유곡이라면 계곡 안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물론 이 경우 싸움의 목표는 전진이 아니라 보존이다. 땅따먹기 싸움이 아니라 살아남기 싸움이다. 버티고 버텨서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게 만들어야 한다.

비유를 약간 틀면 이런 얘기가 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계의 잽 연타에 그로기 상태가 돼 코너에 몰려있다. 가드를 올리고 버티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야 KO패를 면할 수 있다.

물론 칠전팔기의 역전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KO든 판정이든 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 가드를 내리고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다.

그래서인가 보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가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의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진을 빼는 이유가 그것인가 보다. 젖 먹던 힘까지 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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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의장이 속리산 산행에서 연설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동안거’를 끝냈다. 대선 패배 후 40여일 만이다. 더불어 ‘묵언수행’도 ‘잠행’도 끝냈다.

속리산에 올라 말했다. “신당 안에서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이 말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탈당하지 않겠다는 뜻이 하나이고, 정치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뜻이 둘이다.

명분이 뭘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으로서 책무를 다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야당, 야당다운 야당을 일으켜 세우는 데 조력하는 것”이다.

맞는 말 같긴 한데 좀 싱겁다. 양념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치 무지렁이도 알만한 이 당위를 검증하려고 여태까지 신당 창당설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걸까? 행여 자신의 정치 재개를 위한 명분쌓기용으로 ‘분란’을 방조한 것은 아닐까? ‘구당’의 결단으로 ‘분란’을 잠재우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 재개에 날아들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했던 건 아닐까?

그만 두자. 뭐라 할 수가 없다. 대선 4수 끝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3수로도 모자라 4수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 비하면 정동영 전 의장의 이력은 새발의 피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득도’한 걸까? ‘동안거’를 40여일 만에 끝낼 정도로 수행정진에 성과를 본 것일까?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으로서(의) 책무를 다 하겠다”고 했다. “국민 마음을 굳어지게 한 것을 반성한다”며 “선거 패배의 모든 원인과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도 했다.

정동영 전 의장이 말한 ‘반성’과 ‘책임’이 뭘까? ‘선명야당 건설’이다. “고릴라 같은 여당이 출현하면 짓밟히는 것은 약자의 권리와 이익이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선명야당’을 건설하는 게 그의 책무다. 이를 위해 ‘총선 출마’를 포함해 자신의 거취를 정하겠다고 했다.

이것으로 족한 걸까? 이게 반성하는 자세로 책무를 다 하는 걸까?

‘총선 출마’는 아직 불투명하다. ‘출마’가 불투명한 게 아니라 ‘출마 지역’이 불투명하다. 정동영 전 의장의 언급이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수도권 출마’를 뜻하는 것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래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다. ‘수도권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생각해보라. ‘전북 출마’는 너무 쉽다. ‘땅 짚고 헤엄치기’에 가까운 행동으로 책무를 다 했노라고 주장하는 건 면구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그럼 ‘수도권 출마’는 책무를 다 하는 행동일까? 물론 리스크는 있다. 만에 하나 낙선하면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초과이윤을 거둔다. 전북을 넘어 수도권의 대표인물이 됨으로써 ‘전국구 스타’가 되고, 그의 ‘꿈’은 날개를 단다.

정동영 전 의장의 ‘수도권 출마’를 ‘반성’ ‘책무’와 연결하는 건 무리다. 차라리 ‘투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더 타당하다.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있다. ‘선명야당 건설’이다. ‘선언’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두 번씩이나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으면서 실용노선을 이끌어온 그다. 그런 그가 ‘선명야당’을 읊조린다.

간극이 너무 크다. ‘실용’과 ‘선명’의 두 개념 사이를 벌리는 틈이 너무 넓다. 반면에 너무 짧다. ‘실용’을 이끌던 과거와 ‘선명’을 부르짖는 현재의 시간차가 너무 짧다.

교통정리가 됐는지도 의문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엊그제 손학규 대표와 전화통화를 갖고 ‘강력한 선명야당 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한다.

도대체 뭘 공감한 걸까? 손학규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용주의자다. 그래서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일부 인사가, 쇄신과 선명을 주장하던 일부 인사가 ‘손학규 대표 선출’에 반대했었다.

이런 마당에 뭘 공감한 걸까? 정동영 전 의장의 ‘선명’과 손학규 대표의 ‘선명’ 개념은 정말 하나의 개념일까? 아니면 일심동체가 된 두 사람이 말하는 ‘선명’과 일반인이 알고 있는 ‘선명’에 개념차가 있는 걸까?

풀린 건 아무 것도 없다. 정동영 전 의장은 ‘반성’하고 ‘책무’를 다하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머릿속이 여전히 어지럽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묻는다.

“정동영 전 의장님, 득도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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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어둡다. 통합신당의 '손학규 체제'가 삐그덕거린다고 한다. 대표적 증좌로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을 꼽는다. 다른 친노 의원 몇몇의 동요 조짐도 있다고 한다. 출발과 동시에 장애물이 가로막고 섰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과 친노 의원들의 동요는 장애물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손학규 대표 쪽 입장에서 보면 '불감청고소원'에 가깝다.

'손학규 체제'의 성격이 그렇다. 손학규 대표의 임기는 총선 때까지다. 선거용 대표이고 선거용 체제다.

'손학규 체제'가 총선의 최우선 전략으로 상정하는 게 '탈노무현'이다. '노무현의 덫'에 걸려 참패한 대선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노무현 색깔'을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대표를 밀어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내 인사 그 누구도 '노무현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상황 인식에 따르면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은 '호재'이지 '악재'가 아니다. 친노 의원 몇몇이 동반 탈당을 해준다면 공천과정에서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으니까 더없이 좋다. 이들에게 친노 세력의 동요와 이탈은 결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탈색제에 가깝다.

궁금해진다. '탈노무현'이 지상과제였다면 손학규 외에도 대안이 있었다. 쇄신파 초선의원들의 주장대로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실명이 거론된 외부 인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명도가 문제였다고 한다. 그 누구를 영입해도 손학규만한 지명도를 갖출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손학규 노선'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념에서 벗어나 중도실용적 입장에서 민생을 챙길 노선이 필요했고, 그런 이미지를 갖춘 인물이 긴요했다고 한다. 작금의 정치트렌드가 중도실용이기에 그에 부합하는 인물이 절실했다고 한다.

손학규여야만 했던 이유를 정리하다 보니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손학규는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탈노무현'과 '중도실용'을 양바퀴로 삼는 선거전략이라면 이미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 적이 있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통합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고건 대망론이 나왔고,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세론을 형성했을 때 정운찬 대안론이 나왔다.

하지만 두 명의 주인공은 흥행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라는 말 한 방에, 정운찬 전 총장은 '현실 정치의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액션 한 번 펼치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손학규 체제'는 삼세 번 도전 끝에 겨우 손에 쥔 성과다. 그토록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길을 마침내 열어젖힌 최초의 성과다.

탄탄대로일까? '손학규의 길'은 여의도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한다. 지뢰가 곳곳에 널려있다고 한다.

야당 난립이 문제라고 한다. 통합신당 외에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이 따로 후보를 내면 표가 분산돼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또 다시 통합이 모색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다. 지역기반이 돼야 할 호남에서마저 외면당했다. 자생력이 거의 없어진 정당이 후보를 내봤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정당과 비싼값 들여 통합 흥정을 할 이유가 없다. 창조한국당도 그렇다. 대선 득표율 7%로는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대선자금 용처 문제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실탄도 떨어졌다.

두 당은 경쟁자가 될 수 없다. 무시와 고사작전으로 가는 게 싸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충청지역 출신 의원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회창 씨의 '자유신당'으로 옮겨가려는 의원들이 대여섯 명 된다는 얘기가 흉흉하게 돌고 있다.

이건 아프다. 대선 결과만 놓고 보면 한 번 해볼만한 곳이 충청 지역이다. 현역 의원의 조직에 중앙당의 지원을 결합해 총력전을 펼치면서 자유신당과 한나라당의 각축 틈새를 파고든다면 몇 석 건질 수도 있는 지역이다.

의석 몇 개를 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상징성이다. 수도권 109개 지역구 가운데 5곳에서만 금배지를 건질 수 있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 조사결과가 현실화된다면 통합신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충청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런 마당에 최일선에 서야 할 현역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통합신당으로선 진지를 잃는 것과 진배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정공법 외에는 달리 동원할 카드가 없다. 호남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충청지역의 동요를 잠재우고, 수도권을 지키려면 '맞짱'을 뜨는 수밖에 없다. 모든 아젠다를 독점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와 '맞짱'을 떠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극대화하는 길이 최선이다.

'손학규의 길'을 밟기로 한 이유가 이것이다. 손학규 대표를 간판으로 내걸었으니 '노무현 색깔'이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나머지 한 방, 즉 중도실용노선으로 이명박 당선자와 정책대결을 펼치려고 한다. 누가 진짜 중도실용의 전도사인지를 가리려고 한다.

입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5월말까지는 통합신당이 원내 제1당이다. 문제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 힘은 남아있다.

하지만 이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견제'와 '딴죽'은 한 끗 차이다. 통합신당이 이명박 당선자의 독주를 견제한다고 나서도 유권자는 '딴죽걸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다.

'손학규 노선'은 이명박 당선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교육문제나 부동산문제, 기업정책에 관해 손학규 대표도 자율과 세제완화, 시장우선을 주창했다. '견제'를 할 만큼 독특한 정체성도, 뚜렷한 차별성도 없다.

두 눈 질끈 감고 노선 전환을 감행해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말바꾸기가 두고두고 총선 유세장의 '오징어 땅콩'이 되기 십상이고, 그러면 '손학규 노선'의 한 축인 '중도실용'은 '무척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멀리 있지 않다. 지뢰는 통합신당이 밟고 서 있다. 손학규 대표 자체가 지뢰다.

그래서다. 눈여겨봐야 한다. 탈당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친노 의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반손학규' 진영을 형성했던 쇄신파 초선의원들이나 일부중진들이 탈당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이들에겐 명분이 있다. '손학규 노선'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선명한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명박 당선자와의 '맞짱'만 고려한다면 이들의 노선이 더 위력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판이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명분과 노선이 금배지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실질적인 요소는 조직과 실탄이다. 이들에겐 이게 없다.

뛰쳐나가봤자 새로 당을 만들 거처가 없다. 어떻게 천막당사라도 짓는다 해도 일용할 양식을 구할 방법이 없다. 반면에 통합신당은 대선 때 쏟아부은 390억원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다.

명분도 완전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한두 번 탈당한 게 아니다. 민주당→열린우리당→중도개혁통합신당→통합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의 궤적을 그린 사람들이다. 선명성을 내세워 탈당한다고 해서 유권자가 곱게 봐준다는 보장이 없다.

이리 보고 저리 재도 통합신당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노무현의 덫'이 문제가 아니다. 사방이 늪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