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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이 선거판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검토됐다. 신경 쓰고 우려하는 건 따로 있다. ‘냉풍’이다.

조짐이 그렇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진실’로 전제한 다음에 어떤 이견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그랬다. “국민적인 단합”을 주문하고 촉구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원론적인 발언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헌데 그게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말에 이어 행정안전부가 조치를 들고 나왔다. “조사 결과와 관련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어떠한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법 질서나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철저히 단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비난ㆍ비방이나 불법행위가 만연하지 않도록 세밀하게 점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정부와 여당은 이렇게 방침을 세웠다. 국민 단합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강제하려고 한다.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괴담’으로 치부해 단속하려고 한다. "근거없는 비방"으로 보는 근거가 제시하지 않기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다.

강화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런 방침은 보수 언론의 지원사격 덕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중앙일보’가 “진상이 분명해진 이제 더 이상 무책임한 괴담으로 사태를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며 “더 이상의 논란은 이적행위”라고 못 박은 걸 보면 그렇다. '중앙일보'가 "이적행위'라고 했으니 정부가 그냥 놔두면 체제사범을 방치하는 게 되지 않는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혹세무민하는 괴담'으로 켜진 촛불 때문에 크게 데였으니까, 얼마 전 '촛불'을 향해 "반성하라"고 일갈하며 각오를 다졌으니까 정부는 "근거없는 비방이나 어떠한 불법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더 있다. 애국주의 캠페인을 강화할 이유와 계기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6.25’다.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6.25’에 천안함을 오버랩시키면 애국주의 캠페인에 날개를 단다. ‘중앙일보’의 주장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화해정책의 분위기에 취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호전집단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으니까 ‘천안함 교훈’은 백 번, 아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해 밀어붙일 것이다.

자명하다. 대상은 ‘야’와 ‘좌’다. 정부와 여당이 안보 문제에 여야가 없고 좌우가 없다는 전제를 강조하면 할수록 ‘야’와 ‘좌’의 움직임이 더욱 부각된다. 천안함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이 ‘야’니까, 의문점이 제기되고 유통되는 사이버 공간이 ‘좌’의 놀이터가 됐다고 보니까.

예측이 아니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오늘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말했다. 구멍 뚫린 안보태세에 대해 내각이 책임져야 한다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주장에 대해 “민주당과 좌파세력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북한을 두둔하고 비호하고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한 전력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신냉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서해 NLL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다시 냉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 단합 명목아래 특정 세력을 내치는 냉전시대의 행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결과 발표 장면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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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국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질타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오락가락 추궁을 한다는 게 근거다. 지난 2일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잠수사) 2명씩 들락날락 하면서 어떻게 46명을 구조하느냐”고 호통 치더니 어제는 서갑원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천안함 격실에 환풍기가 달려 있어 장병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군의 주장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였다고 따졌다며 이렇게 질책했다. <기사 보기>

기가 차다. ‘중앙일보’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질책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천안함 격실마다 천장에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다고, 전기 스위치로 닫을 수 있지만 방수기능이 별도로 갖춰지지 않은 환풍기였다고, 천안함의 전원이 모두 나가 환풍기를 닫는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불어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69시간 생존이 가능하다는 설명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아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사 보기>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거하면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은 제기할만한 사실을 제기했고 추궁할만한 문제를 추궁한 것이다.

물론 ‘중앙일보’ 기사엔 없다. 두 의원의 추궁이 잘못됐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다만 비교했을 뿐이다. 닷새 전 같은 야당 의원의 질문 맥락과 180도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오락가락’ 추궁을 지적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그것이 정녕 문제라면 ‘중앙일보’, 나아가 모든 언론 또한 과녁에서 탈출할 수 없다. 언론도 어제 달랐고 오늘 달랐다. 내부폭발과 외부충격 사이, 기뢰와 어뢰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추정 보도’를 남발했다.

하지만 크게 탓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부각시킨 언론이 없지 않고, 그들의 의도를 경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결과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면을 잘라 보면 성급한 추정과 섣부른 예단에 빠진 부실 보도임에 틀림없지만 군사정보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해당 의원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비공개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의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도 ‘헛다리’를 짚었다는 확증이 서지 않는 한 국회의원들의 ‘추궁 환경’을 언론과 다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건 만은 그렇다.

‘중앙일보’가 질타할 대상은 국회의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니라 국방부의 ‘용인할 수 없는 입씻기’다. 천안함의 내부 구조는 상세히 브리핑하면서도 격실 천장에 방수가 안 되는 환풍기가 달려있는 사실은 쏙 뺀 국방부의 처사를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그게 먼저고, 그게 본질이다.

국회의원의 추궁을 받아 확인 보도를 한 ‘동아일보’의 ‘대응법’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Posted by '토씨'


‘동아일보’가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낸 서울남부지법의 마은혁 판사는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멤버였다”고, 1987년 결성된 ‘인천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인민노련)’의 이론-선전 부문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보기>

‘중앙일보’가 상세히 짚었다. 법원이 “이념 앞에서 길을 잃(고)” 있다고, 소신을 넘어선 일탈적 판결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법원 안팎에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했다. “김영삼 정부 첫해인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사법시험 합격자도 판사로 임용되기 시작했다”고 따로 짚었다. <기사 보기>

새삼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이들 신문이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법연구회’를 과녁 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법연구회’ 소속인 마은혁 판사를 지렛대 삼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살필 필요가 없다.

지겹다. 법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오히려 그것이 다원화 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행여 이념 문제 때문에 판결 오류가 나온다면 3심제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는 따위의 말은 그만 하자. 중․고등학생도 다 아는 얘기도 귀 닫고 맘 닫으면 생뚱맞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다.

아주 짧게 딱 하나만 짚자. 이런 의문문으로 되묻자.

그래서? 뭘 어쩌자고?

그럼 마은혁 판사를 잘라야 하나? 20여 년 전의 사상․활동 경력을 문제 삼아 법원에서 내쫓아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향서를 쓰도록 해야 하나?

그럼 신원조회를 해야 하나?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가 임용 때 사상․시위 전력을 조회해야 하나? 아니면 신영철 대법관처럼 사건 배당에 개입해 국보법 위반 전력 판사에겐 시국사건을 맡기지 말아야 하나?

설마 이건 아닐 것이다. 대명천지에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정론지’가 이렇게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되묻는 것이다. 뭘 어쩌자는 것이냐고….

 ▲사진=노회찬 마들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 장면. 마은혁 판사가 이 모임에 참석해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노회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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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었다.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의 칼럼을 밑줄 쳐가며 정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랬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 난입해 소동을 벌인 걸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입각해 비판한 보수 신문의 사설에 대해 “옳은 지적”이라고 평한 뒤에 ‘한 발 더’ 내디뎠다.

뭔가 대단한 논리를 내놓는가 싶었다. ‘대기자’라는 직함에 걸맞게 장삼이사는 감히 생각지 못할 논리와 가치를 제시하는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그가 “한 발 더 나아가” 내놓은 건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애국이란 단어에 태생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진보주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자기 나라보다 노동계급을 중요시한 공산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고 했다.

말하지 않으련다.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소리를 낸 게 아니라 ‘한 발 더 물러서’ 낡은 소리를 낸 것으로 보이지만 말하지 않으련다. 그가 “옳은 지적”이라고 평가한 ‘중앙일보’의 사설에 이런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대신 다른 걸 짚으련다. 대기자의 칼럼에 깔려있는 자가당착적 요소다.


문창극 대기자가 말했다. 유신시절에는 애국심이 독재정권의 강화에 이용되었다고, 그래서 반발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요즘 애국가가 울려 나오고 태극기가 펄럭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자신의 이런 감정(또는 양심)을 술회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말했다. “진보를 하든 보수를 하든 대한민국 안에서 해야 한다”고, “그것은 우리의 고난의 역사, 굴곡의 역사를 다 인정하는 동시에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에 대해 자가당착이라고 평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문제 삼는 민중의례는 기실 다른 게 아니다. 애국가 대신 합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노래다. 민주열사에 대해 묵념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문창극 대기자의 감정을 ‘반발’에서 ‘눈물’로 변하도록 밑돌을 놓은 사람들을 기리는 행위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다. 왜 이걸 문제 삼는가. 왜 이걸 ‘애국’의 맞은편에, 반대가치로 설정하는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문창극 대기자가 지적했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라면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든 않든, 애국가를 부르든 않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핍박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되묻는다. 그런데 왜 힐난하지 않는가. 행정안전부가 민중의례를 금지해 “개인의 선택”을 침범했는데 왜 비판하지 않는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는데 왜 문제 삼지 않는가.

괜히 따라왔다. 그가 디딘 발걸음을 좇았더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황량하다. 논리가 높이뛰기를 하고 주장이 불규칙운동을 하는, 혼돈의 땅이다.

▲캡쳐 = ‘중앙일보’ 오늘자 ‘문창극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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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나름’이라는 말 그대로다. 행위는 하나인데 해석은 둘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해빙’ 또는 ‘데탕트’로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청와대에서 만나 ‘웃음꽃’을 피운 것을 중시하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두 사람 간의) ‘해빙(무드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고 전망했고, ‘중앙일보’는 “‘데탕트’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두 사람 사이에 입장차가 여전한 것으로 진단했다. “의견 교환도 있었고 공감한 부분도 있었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말 가운데 ‘도’ 한 글자를 뽑아내 이렇게 짚었다. 이 한 글자에 의지해 ‘경향신문’은 “일부 현안을 두고는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풀이했고, ‘한겨레’는 “두 사람이 주요 현안에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지는 않다”고 추정했다.

가르지 말자. 두 개의 해석 가운데 어느 게 객관적 사실에 근접한 것인지 가르지 말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소상히 밝히지 않는 한 이 역시 보기 나름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닌’ 정치인의 일반적 생리를 간과했는지 모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공감하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공감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평가절하 했는지 모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다 보니 보기 나름의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유용하지 않다. ‘정답을 모르는 찍기’라는 점에서 유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정치발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보더라도 유용하지 않다.


과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도리와 책무를 강조하고 촉구하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계파 수장의 일거수일투족만 좇는 보도 행태가 공간을 넓혀줬다. 계파 수장이 계파 논리에 경도돼 계파의 안위를 챙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과 계파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줬다.

이번에도 똑같다. 왜 말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어야 할 대목에 가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북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 국정 현안을 거론해 놓고서도 “구체적 내용은 얘기하지 않겠다(박근혜)”고 차단막을 치는데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하루 빨리 입장을 밝혀야 정치 갈등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북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가 정치 갈등을 낳는 주요인인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면 여권 유력 정치인에게만 ‘귓속말’을 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차기를 노리는 여권 유력 정치인이라면 민감한 국정 현안을 대통령에게만 ‘낮은 목소리’로 말할 게 아니라 국민 앞에서 당당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아니라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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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자신한 모양이다. "검찰 안팎"의 "얘기"를 빌려 작성한 기사를 4면 머리로 올렸다.

기사의 뼈대는 ‘천성관 의혹’과 ‘노무현 사건’이 닮았다는 것이다. 스폰서와 가족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그렇단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이런 것들이다.

△‘노무현’은 15억원짜리 차용증과 100만 달러, 그리고 미국 부동산이 문제가 됐고 ‘천성관’은 부동산과 이에 따른 빚이 문제가 됐으며 △‘천성관’ 부인의 면세점 명품 쇼핑과 권양숙 씨의 1억원짜리 시계 선물이 닮았으며 △‘천성관’ 아들의 위장전입 및 신용카드 사용 의혹이 노건호 씨의 투자회사 의혹과 겹친다고 했다.

기가 막힌다. ‘중앙일보’가 다른 언론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창의적’ 발상을 감행한 점에서 기가 막히고, 그 ‘창의적’ 발상이 가치판단 영역이 아니라 사실판단 영역에서 감행됐다는 점에서 기가 막힌다. 그래서 다시 하련다. '중앙일보'가 '창의적'으로 판단한 사실과,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비교해보련다.


‘노무현’의 차용증과 ‘천성관’의 차용증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노무현’의 15억원짜리 차용증은 봉하마을 사저를 짓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측이 자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 또한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반면에 ’천성관‘의 차용증은 의혹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차용증 작성시점인 4월 20일을 기준으로 하면 ’천성관‘이 사업가 박모 씨로부터 진 빚은 15억 5천만원인데 차용증에는 8억원으로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명품’도 성격이 다르다. ‘천성관’ 부인의 ‘명품’은 사업가 박모 씨 등과 함께 제 발로 면세점에 가 구입한 것이고, 권양숙 씨의 ‘명품 시계’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노건평 씨의 부인에게 전달된 것(노무현 전 대통령 부산상고 동기의 증언)으로 권양숙 씨는 구경도 못해 본 것이다.

아들 행적은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위장전입 및 신용카드 사용 의혹과 사업투자는 누가 봐도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노건호 사업자금 출처'에 대한 의심에 기초해 '천성관' 아들의 씀씀이를 되살피면 의외의 가설만 도출된다. ‘천성관’ 아들의 과다한 씀씀이의 출처는 스폰서라는 가설 말이다. 앞서 언급하지 않은 '노무현'의 100만 달러와 미국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비교 결과가 이렇다. ‘중앙일보’의 ‘대단한 발견’은 등장배우의 면면만 보고 극 전개가 전혀 다른 두 영화를 본편과 속편으로 엮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수박의 겉만 핧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중앙일보’에게 갈무리용 멘트를 날려야 하지만 참으련다. ‘중앙일보’의 ‘헛발질’이 내놓을 ‘창의적’ 결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노무현‘과 닮은 ’천성관‘에 ‘노무현 수사’ 때 내보였던 것과 같은 준엄한 논조를 유지하려면 응당 ‘천성관’을 ‘노무현’과 동급으로 수사하라고 촉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들의 판단이 아니라 "검찰 안팎"의 판단을 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판단하는 검찰이라면 마땅히 '천성관'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해야 하는 게 '노무현'에게 내보였던 '중앙일보'의 논조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진짜 이렇게 촉구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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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를 읽으면 보인다. 국정쇄신 요구에 맞닥뜨린 이명박 대통령의 속내가 뭔지가 훤히 보인다. 그러니까 정독하자.

진단이 명징했다. “6·10‘이 조용히 끝났다”고 했다. “국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와 정치·이념 투쟁을 구분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예상보다 차분한 6월”이었다고 했다.

전달도 분명했다. “(청와대)정무수석실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현 정부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20%대 초반까지 추락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최근엔 32%에서 36% 사이를 오르내릴 정도로 회복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속도감 있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라고도 전했다.

끝났다. ‘중앙일보’의 진단과 전달에 따르면 국정쇄신 요구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꿀릴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납작 엎드릴 이유가 전혀 없다. 정국의 분수령이었던 ‘6·10’은 일부 극소수 시민과 동원된 노조원들만의 ‘집안잔치’로 끝났고, 대다수 국민은 “조문 열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고개를 젓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무섭고 뭐가 켕기겠는가.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의 전달에 따르면 청와대는 확신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가 아닌 길거리로 나서면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더 거리낄 게 없다. 민주당의 제동력이 약화됐으니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면 된다. “민생법안이 산적한 6월 국회가 흐지부지될 경우 ‘침묵하는 다수’의 지지를 여권이 흡수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내달려야 한다. 자칫하다간 가까스로 잡은 ‘반전의 계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실천은 이미 시작됐다. 한나라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6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 30개를 선정했다.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을 포함하는 민생법안 30개를 추렸다. 이제 행동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길거리에서 역풍을 맞은 민주당이 뒷머리 긁적이며 등원하는 순간 MB입법에 기어를 넣기만 하면 된다.

상황은 이처럼 낙관적이다. ‘중앙일보’가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달할 정도로 흐름은 순풍을 타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분노를 누르고 국정쇄신에 대한 염원을 접고 기다리면 열린다. 이성이 지배하고 평온이 유지되며 민생이 만개하는 ‘별천지’가 열린다.

▲‘중앙일보’ 12일자 1면 기사(위)와 3면 기사(아래)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