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저께군요. 딱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습니다. 이 책 저 책에 침을 묻히다가 시계를 보니 시침과 분침 모두 하늘을 향해 곧추 섰더군요.
서점 문을 열고 나와 엎어지면 코 닿을 피맛골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재개발 때문에 모두 헐리고 세 집 밖에 남지 않은 그 곳. 풍경은 썰렁했지만 맛은 그대로였습니다.
순두부찌게를 시켜놓고 물대신 나온 숭늉을 후후 불어 마시는데 키가 190cm쯤 돼 보이는 외국인 남성이 꾸부정한 자세로 들어와 어눌한 말투로 음식을 시키더군요. “제유포쿰!”
순두부를 밥에 비비며 훔쳐본 그 사람의 손놀림은 능숙했습니다. 한두 번 먹는 게 아닌 듯 제육볶음이 담긴 접시에 공기밥을 붓더니 석석 비벼 맛있게 먹더군요. 살짝 웃었습니다. 그에겐 매웠을 법한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정겨웠고, 누렇게 색 바래고 여기저기 볼펜똥이 묻은 벽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친숙했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피맛골에 얽힌 기사가 실렸더군요.
‘청일집.’ 청진동에서 제일 먼저 생겼다고 해서 간판을 ‘청일집’으로 올렸다는 그 음식점이 65년의 역사를 접고 이사를 간다는 뉴스였습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 수없이 늘어섰던 음식점들이 그러했듯 ‘청일집’ 또한 재개발의 뒤켠으로 사라진다는 뉴스였습니다. ‘청일집’과 함께 막걸리 시절의 추억도 사라진다는 뉴스였습니다.
3.
추억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피맛골이 사라짐과 동시에 대포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탁배기 한 사발에 시대에 대한 불만과 살림살이의 강퍅함을 털던 서민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디자인 서울’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역사와 생활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서울에 와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 밖에 본 기억이 없다고 투덜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제대로 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잘 정돈된 전통가옥만이 아니라 보통 한국인의 보통 생활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재산권 행사를 어찌 막느냐는 항변과, 다른 종로통에 남아있는 피맛골은 보존하지 않느냐는 핀잔에 정색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완전히 털어낼 수 없습니다. 교보문고 옆 피맛골만의 고유한 생선 굽는 냄새가 있었거든요.
새삼 궁금해지네요. ‘제유포쿰’을 맛있게 먹던 그 외국인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요?
▲캡쳐=‘청일집’ 철거 소식을 전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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