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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5 '제유포쿰'을 맛있게 먹던 그 외국인은… (3)
  2. 2009/04/29 '포식자'는 '용산'을 기억하지 않는다 (10)


1.
그저께군요. 딱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습니다. 이 책 저 책에 침을 묻히다가 시계를 보니 시침과 분침 모두 하늘을 향해 곧추 섰더군요.

서점 문을 열고 나와 엎어지면 코 닿을 피맛골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재개발 때문에 모두 헐리고 세 집 밖에 남지 않은 그 곳. 풍경은 썰렁했지만 맛은 그대로였습니다.

순두부찌게를 시켜놓고 물대신 나온 숭늉을 후후 불어 마시는데 키가 190cm쯤 돼 보이는 외국인 남성이 꾸부정한 자세로 들어와 어눌한 말투로 음식을 시키더군요. “제유포쿰!”

순두부를 밥에 비비며 훔쳐본 그 사람의 손놀림은 능숙했습니다. 한두 번 먹는 게 아닌 듯 제육볶음이 담긴 접시에 공기밥을 붓더니 석석 비벼 맛있게 먹더군요. 살짝 웃었습니다. 그에겐 매웠을 법한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정겨웠고, 누렇게 색 바래고 여기저기 볼펜똥이 묻은 벽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친숙했습니다.

2.
오늘 신문을 보니 피맛골에 얽힌 기사가 실렸더군요.

‘청일집.’ 청진동에서 제일 먼저 생겼다고 해서 간판을 ‘청일집’으로 올렸다는 그 음식점이 65년의 역사를 접고 이사를 간다는 뉴스였습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 수없이 늘어섰던 음식점들이 그러했듯 ‘청일집’ 또한 재개발의 뒤켠으로 사라진다는 뉴스였습니다. ‘청일집’과 함께 막걸리 시절의 추억도 사라진다는 뉴스였습니다.

3.
추억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피맛골이 사라짐과 동시에 대포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탁배기 한 사발에 시대에 대한 불만과 살림살이의 강퍅함을 털던 서민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디자인 서울’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역사와 생활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서울에 와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 밖에 본 기억이 없다고 투덜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제대로 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잘 정돈된 전통가옥만이 아니라 보통 한국인의 보통 생활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재산권 행사를 어찌 막느냐는 항변과, 다른 종로통에 남아있는 피맛골은 보존하지 않느냐는 핀잔에 정색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완전히 털어낼 수 없습니다. 교보문고 옆 피맛골만의 고유한 생선 굽는 냄새가 있었거든요.

새삼 궁금해지네요. ‘제유포쿰’을 맛있게 먹던 그 외국인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요?

▲캡쳐=‘청일집’ 철거 소식을 전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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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1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악에 받혀 1년 넘게 싸우던 철거민 아주머니가 울었습니다. 서울 성수동에서 지하 셋방에 살다가 재건축 바람에 등 떠밀린 철거민 아주머니가 이주비 보상(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은 이주비도 지급하지 않습니다) 등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끝내 눈물을 훔쳤습니다. 집주인 얘기가 나온 대목에서였습니다.

재건축이 확정되는 순간 닦달하더랍니다. 재건축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회를 같이 다니던 집사님이었답니다. 그랬던 집주인이 이사 가겠다고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더랍니다.

“세입자 주제에 나가라면 나가지 골치 아프게 하냐고 저녁마다 찾아와 싸웠어요. 애들 보는 앞에서…(눈물)…애들 보는 앞에서 우니까 애들이 엄마 울지 말라고…(눈물)….”

철거민 아주머니는 끝내 말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3년 넘게 나가던 교회도 괜히 못 나가게 됐다며 폐건물 한 켠에 마련된 철거민 숙소 방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2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고 합니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정치권의 제도정비 약속은 없던 일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잊혀지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건만 분향소를 찾는 발길이 잦아들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한 현상인지 모릅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 상당수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 일부는 불편해 합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잊히기를 기대합니다. 성수동 철거민 아주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집주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박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똑똑히 목도했습니다. 총선 후보들의 뉴타운 공약에 춤을 췄습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정치권의 장단에 맞춰 욕망의 춤사위를 펼쳤습니다.

지난 3월 31일 어느 뉴타운 재개발 조합은 조합 임원들에게 74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세입자수를 3350명에서 2200명으로 줄여 120억원을 아꼈고, 이주기간을 4개월 단축해 128억원을 줄였다는 등의 이유로 거액의 보너스를 쥐어주려 했습니다(이 의결은 일주일 뒤 일부 조합원의 반발과 여론의 비난에 못 이겨 철회됐습니다).

정치권이 굳이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세입자들은 언제 자기 지역구를 뜰지 모르는 철새 유권자인 반면에 집주인들은 지역구에 터 잡고 살아가는 텃새 유권자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표심에까지 영향을 미칠 유력한 전파자입니다. 줄을 서 있습니다. 이런 집주인들이 차고 넘칩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런 유권자들과 척을 지면서 세입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입자에 욕 먹어봤자 귀가 잠깐 아플 뿐이지만 집주인에게 욕 먹으면 낙선을 각오해야 합니다.

#3
‘용산참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용산’은 정글입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이곳에서 쫓겨난 세입자는 초식동물입니다. 포식자의 멈추지 않는 식욕을 채워주는 슬픈 초식동물입니다.

초식동물의 시체를 거름 삼아 초원의 풀이 자라고, 그 풀을 엄폐물 삼아 육식동물이 또 다른 먹잇감을 노리듯  ‘용산’의 폐허 위로 초고층 아파트가 오르면 잊을 겁니다. 위풍당당한 초고층 아파트 사이로 또 다른 욕망(특목고 설립과 같은)을 잉태하면서 하늘을 쳐다볼 겁니다. 발 밑에 슬픈 초식동물의 비명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채….

▲사진=한 시민이 ‘용산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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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