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류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6/19 덤프 기사 아내의 가계부 (130)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의 파업 현장은 어느 파업 현장보다 결기를 띤 모습이다. 16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건설노조의 17일 과천정부종합청사 집회에선 조합원들이 자신의 덤프와 굴착기에서 떼어난 번호판을 목에 걸고 나섰다. 자신들의 호구책을 걸고 나선 것이다.

‘생계형’ 파업으로도 불리는 이번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파업이지만 언론의 초점은 결국 언제나 그랬듯이 물류·건설 현장의 운행·가동 중지로 모아지고 있다. 극심한 생활고에 생존을 위해 나섰다는 그들의 속사정은 ‘힘들겠거니’ 또는 ‘엄살’ 쯤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하루하루 버티는 게 꿈 같아요. 남편한테 ‘한 사람 희생하고 남은 식구 새 살림 살게 도둑질이라도 하라’고까지 하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서….”

건설노조 조합원 김신철(54·가명) 씨의 아내 이정희(49·가명) 씨를 만났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저녁 11시나 돼야 돌아오는 식당일을 마치고서다. 처음엔 한사코 거절했다. 적자 인생을 보여주는 게 무슨 자랑거리냐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다.

“18년 전 남편이 덤프 일을 시작할 때는 ‘부수익’도 있고 경기가 나쁘지 않았죠. 그런데 그 IMF 때문에 건설회사에서 부도수표를 남발하더니만 그 뒤론 우리처럼 덤프 하나 믿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게 걱정이 됐죠. 이 악물고 벌어보자고 재작년에 15돈(톤)에서 25돈 중고 덤프를 4000만 원에 대출받아 몰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적자를 내고 있으니….”

이 씨가 남편의 4월 매출내역서와 6월 결제분 카드 고지서를 꺼내 온다. 비오는 날 등을 빼고 20일을 새벽 4시에 나가 하루 15시간씩 일 해 올린 총매출액이 736만 2000원. 그러나 하루 평균 300km 이상 운행을 하며 나가는 기름값이 400여만 원(2080리터×1800~1900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7월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다 올 초부터 천정부지로 뛴 기름값은 매일같이 김 씨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이번엔 카드 고지서. 이 씨가 남편 김 씨에게 ‘덤프에만 들어가는 경상비’ 사용목적으로 준 유일한 김 씨 소유의 카드다. 전달에 중고 덤프가 말썽을 부려 들어간 수리비에 타이어, 부품값 등으로 결제한 금액이 277만 6000원이다. 회사의 요구로 관행처럼 과적을 하다 보니 낡은 덤프가 배겨날 수가 없어 수리비가 만만치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기에 중고 덤프 할부금이 148만 원, 차량보험료가 60만 원이 나갔다. 여기까지만 마이너스 150만 원이다. 덤프에 들어가는 돈 만이다. 김 씨의 식대, 기타 잡비까지는 계산할 엄두도 못 낸다. 게다가 4월 수익은 어음 기일이 남아 김 씨의 수중에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다.

“목숨이 붙어있으니깐 사는 거라고 애기 아빠 덤프 동료 와이프들이랑 만날 얘기 하죠. 저번 달에는 도저히 메울 길이 없어 시댁 식구들한테 500만 원을 빌렸어요. 이젠 더 이상 융통할 데도 없고…. 이러다보니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니까요.”

이 씨가 식당에 나가 버는 돈은 월 130만 원. 대학 졸업반 아들과 고3 딸의 교육비에 생활비, 월세, 각종 세금에 덤프 적자까지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아들은 군대 다녀와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복학했어요. 그런데 그 돈도 내가 관리한답시고 다 썼어요. 다음 학기엔 융자를 받으라고 했죠. 우리 딸은 올해 수능 봐야 하는데 돈 달라는 이야기 할 때마다 맡겨놨냐고 소리를 질러버리고, 딸은 또 ‘그럼 나 대학 안 간다’고 하고…. 부모가 할 짓이 아니죠.“

결국 눈물을 훔친다. 술 담배도 안하고, 사교육은 꿈도 못 꿨지만 잘 커준 아들이 ‘그럼 저라도 일을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다. 순대 장사, 과일 장사를 하면서 손목이 망가져 지난해 수술까지 받았지만 식당일을 안 다닐 수가 없다.

“작년 6월에 살던 곳에서 재개발한다고 집주인한테 쫓겨나 이 곳 40만 원 월세집에 들어왔죠. 그나마 우리는 좀 나은 편이죠. 인근에서 살던 남편 동료는 강제철거를 당해 아직까지 살 집을 구하지 못하고 길에서 천막을 친 채 구청과 싸우고 있어요.”

김 씨가 노조(이 씨 표현으로는 ‘연대’)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이 씨는 무척 반대했다고 한다. 월 3만 원 회비가 아까워서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반대할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대를 하고 나서야 건설회사에서 수금을 내주더라구요. 우리나라는 말로 좋게 해선 안 되나 봐요.”

‘살 길이 뭐가 있겠냐?’고 물었다. 이 씨는 발주처니 원칭, 하청이니 어떤 정책이니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대신 정부에 호소했다.

“방법? 휴… 제 주위에 덤프 하는 사람들은 다 임대 아파트 아니면 달동네, 지하방에서 살아요. 남편 있는 마누라들은 모두 덤프에서 손 떼고 노가다라도 뛰라고 말하죠. 나라 전체가 힘드니 어떻게 하냐, 시간 지나면 나아지지 않겠냐고 위안 삼았지만 이젠 너무 지쳐요. 정부에 하소연한다고 투쟁하는 것 같은데, 국민들을 위해 나라가 있다면 일만 하고 한 평생 살아온 사람들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진 위=멈춰선 덤프트럭들 ⓒ오마이뉴스
▲사진 아래=건설노조원 가족의 가계부와 신용카드 청구서 ⓒ시민사회신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초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싱글대디의 12년 외사랑  (6) 2008/06/20
덤프 기사 아내의 가계부  (130) 2008/06/19
임헌조, '햄버거' 이후를 말하다  (606) 2008/06/17
"경찰 욕에 '욱'…다신 안 올라가"  (83) 2008/06/14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