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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퇴근길에 집근처 공설운동장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잖아도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가보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저녁 10시정도 되더군요. 아이들(두 딸이 있습니다. 10살, 9살)이 아직 안 자고 있길래 "아빠,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분향소에 갈 건데, 같이 갈래?" 하는 말에 아이들은 "아빠 같이 가요"….

아이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딸아이가 묻더군요. "아빠,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왜 자살했어요?" 순간 망설여졌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이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런데 무책임하게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현실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향소에 도착하여 아이들과 함께 꽃을 놓으며 잠시 묵념을 하고 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영상을 아이들과 잠시 보았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말없이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5월 27일, 제 블로그 방명록에 올라온 글입니다. 한 방문객이 남긴 글입니다.

머리가 ‘띵’ 했습니다. 한 구절에 시선을 꽂은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아빠,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왜 자살했어요?" 라는 딸아이의 질문에 아무 설명도 할 수 없었던 그 분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헤아릴수록 갑갑증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물론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입니다. 남을 겁니다. 몇 년, 아니 몇 십 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아픈 역사로 남게 될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교육입니다. 물어볼 겁니다. 우리의 자식 또는 우리의 손자가 물어볼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왜 자살했어요?”란 질문을 던질 겁니다.

어떤 기록을 보여줘야 할까요?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요?

정부와 검찰의 정치보복성 먼지털이식 수사 때문에 서거한 것이라고 가르치면 될까요? 아니면 포괄적 뇌물죄 혐의와 친인척 비리에 수치감을 느껴 자살한 것이라고 가르치면 될까요?

3.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거대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먼지만 쌓이고 ‘옥’과 ‘석’은 여전히 땅 속에 뒤엉켜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받을 만한 행위를 했는지, 다시 말해 재임 중에 금품이 오간 사실을 알고도 두 눈 질끈 감았는지는 영영 알 수가 없습니다.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수사한 자료는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된 석 달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톱뉴스를 장식했던 숱한 조각 정보들도 사실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권양숙 씨가 받은 돈이 100만 달러인지 140만 달러인지, 노정연 씨가 미국 주택 계약서를 찢었는지 아닌지, 1억짜리 명품 시계가 논두렁에 버려졌는지 아닌지, 그 어느 것 하나 ‘공식적으로’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뒷전이고 정치만 창궐합니다. 기록은 팽개치고 주장만 쏟아냅니다.

언론은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로 나뉘어 싸움을 벌입니다. 국회를 열어 검찰 수사자료를 파헤쳐야 할 정치권은 집안싸움에 공방전만 벌입니다. 검찰총장은 ‘노무현 수사’는 정당했다고 강변하는 한편 ‘수사 외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유유히 떠나갑니다.

이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갑니다. 더불어 ‘진실’은 속절없이 묻혀갑니다.

4.

먼 훗날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과거’가 돼 버린 노무현 수사를 놓고 핏대를 세울 겁니다. 정파와 이념과 세력으로 편을 갈라 삿대질을 할 겁니다.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제 맘대로 ‘과거사’를 재단하면서 멱살잡이를 할 겁니다. 그러면서 ‘정사’는 파묻히고 ‘야사’가 득세할 겁니다.

우리의 자식과 손자는 또 헷갈리겠지요.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를 헤아리기 전에 삿대질과 멱살잡이에 환멸을 느껴 도리질을 할 겁니다. 정치권과 언론계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진실을 갈구하는 마음을 접을 겁니다.

이렇게 역사는 퇴색해 가고 교육은 피멍이 들어갑니다.

▲사진=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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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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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저리 똑같을까? 물러나는 사람들의 발언이 똑같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물러나면서 그랬다. "투기꾼이 아닌데 억울하다"고 했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도 그랬다. "억울하다"는 표현을 직접 쓰진 않았지만 자신의 재산은 모두 물려받은 것이라는 말로 '왜 정당한 부를 문제 삼느냐'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에도 똑같다. 박미석 사회정책수석도 억울하다고 했다. "다 사실이 아니고", "내가 아니라 남편이 한 일"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힘들다. 변명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거꾸로 읽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자기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단지 여론재판에 걸려 희생당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모두가 억울하다?…시각·입장이 다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의 이런 '당당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게 있다. 시각차와 입장차다. 국민 정서와 크게 어긋나 있는 이들의 시각이 단지 이들만의 것인지를 짚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에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그랬다. '학교 자율화' 조치를 내놓은 후 "전 국민이 환영하고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이 그랬다. '생쥐깡' 파문이 일었을 때 "생쥐를 튀겨 먹으면 몸에 좋다더라"고 했다.

'한가한 얘기'를 넘어 '염장 지르기'에 가까운 이들의 발언에서 온기는 전혀 감지할 수 없다. 국민 처지와 국민 정서에 밀착해 있다는 증좌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으로 농민 생존권과 국민 건강권이 쟁점으로 떠오른 마당에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게 됐다"고 했다. 어제는 1억원짜리 일본 소를 예를 들면서 “우리도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으면 일본처럼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스스로 7% 경제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52개 생필품조차 집중관리를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고 있다.

꼬투리 잡으려고 복기하는 게 아니다. 말꼬리 잡으려는 의도도 없다. 이런 사고와 입장에 경도된 정부 당국자들이 펼칠 정책이 걱정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수립한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나타날 혼선이 우려되기에 하는 말이다.

기우가 아니다. '학교 자율화' 조치의 발상법이 그러 했고 '혁신도시' 정책의 갈짓자 행보가 그러 했다.

'프레스 프렌들리'는 어떻게 될까?

하나 더 말하자. 엇나간 정책과 혼란스런 정책 집행 때문에 국민 반발이 거세지면 이들은 또 뭐라고 할까?

전에는 그랬다. '오해'라고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반발이 거세지면 이들은 '오해'라고 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했다.

'원망'이 싹트게 돼 있다. '오해'가 빚어지는 건 '소통'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탓하려 할 것이다. 물러난 각료가 언론을 향해 '억울하다'고 한 것처럼 남아있는 각료들이 언론을 향해 그럴 것이다. '너무 한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할까? 일단 혼선의 여지를 줄일 것이다.

6월이면 18대 국회가 구성된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는 국회다. 때맞춰 당 대표도 갈리고 원내대표단도 교체된다. 진용을 갖추면 밀어붙일 수 있다. 혼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당정간 조율하고 국회에서 입법화할 수 있다.

그래도 남는다. 정부와 여당이 그럴수록, 그렇게 밀어붙이는 정책이 '국민을 섬기는' 것과 거리가 먼 것일수록 국민 반발은 커질 것이다.

이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과의 소통구조를 손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이른바 '프레스 프렌들리'의 방법론을 달리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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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조변석개라고 했던가? 그럼 이 말도 성립될 만하다. 동변춘개다.

언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표변을 해도 이렇게 심하게 표변할 수가 없다.

겨울에 그랬다. 대선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명박 이름 석 자 뒤에 '당선인'이란 호칭을 달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하자 군말없이 '당선인'이라고 호칭했다.

봄엔 이렇다. 그 어느 언론도 '당선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99명 모두를 '당선자'라고 부른다.

'인'은 '사람'이고 '자'는 '놈'이란 직역은 애당초 성립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후보자, 선거권자, 당선자 모두 법률에 적시돼 있는 법률 용어였다. 법률에 의해 엄연히 '자'로 규정된 사람 중에는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 즉 '선거권자'도 포함돼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최고법인 헌법 67조 2항에 엄연히 대통령 '당선자'로 적시돼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1월 10일 BBK특검법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당선인'이 아니라 '당선자'로 표기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통령직 인수위법에 한 자 걸쳐 있다는 인수위의 설명을 군말 없이 받아들여 '당선인'이라고 표기했다. 하위법을 근거로 들어 상위법을 인정하지 않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넉달…. 이번엔 다시 '당선자'라 부른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신분 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건 넌센스다. 국회의원도 엄연한 헌법기관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낮은 자세로 임한다고 했었다.

고깝게 볼 일이 아닐지 모른다. 경위야 어떻든 결과가 바로 잡혔다면 반길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흔쾌하지 않고 깔끔하지 않다. '당선인'을 '당선자'로 바꿔 부르는 현상을 숙고와 반성의 결과라고 볼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권력의 힘에 끌려 팽창했던 몰상식이 관성의 법칙에 의해 자연 수축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겨우내 동면상태에 들어갔던 상식이 꽃바람에 자연 해동됐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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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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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YTN의 '돌발영상'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100여 명의 기자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만 수십 명이다. 그리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기자회견장을 찾은 기자도 줄잡아 수십 명이다. 합치면 100명은 훌쩍 넘긴다. 그런데도 단 한 명도, 단 한 줄의 기사도 쓰지 않았다.

사제단이 '삼성 금품' 수수 명단을 발표하기 한 시간 전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근거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사전 논평을 내놨다. 그로부터 1시간 뒤 사제단은 청와대의 사전 논평 사실을 기자들 앞에서 공개했다.

웬만한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품었어야 한다. 청와대는 어떻게 "근거 없는" 의혹으로 치부할 수 있었는지 그 경위를 캤어야 한다. '삼성 금품'을 수수한 사람의 실명이 나오기도 전에 어떻게 "근거 없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는지 문제의식을 가졌어야 한다.

"얼떨결에 놓쳤다"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예열'은 충분히 돼 있었다.

초대 내각에 이름을 올렸던 세 명이 낙마한 후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았다. 인사 검증 시스템이 부실했다고, 인사 검증 의지가 부족했다고 합창했다.

사제단의 '삼성 금품' 수수 명단 발표는 그 직후에 이뤄졌다. 조각 파동의 연장선 위에서 '삼성 금품' 명단이 발표된 것이다.

그래서다. 청와대의 사전 논평 배경을 캤어야 한다. 사전 논평 배경을 규명해 가렸어야 한다. 인사 검증 시스템이 부실하고 인사 검증 의지가 부족해서 또 한 번 인사파동을 자초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제단의 명단 발표가 섣부른 것이었는지를 가렸어야 한다.

일찌감치 낙점한 사람들에 대한 검증이 부족해 세 명의 낙마사태를 부른 마당에 어떻게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사람들을 검증할 수 있었는지는 되묻지 않으련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들이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의 '삼성 금품' 수수 의혹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제단에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파악 경로가 석연치 않지만 청와대의 사전 파악 가능성을 완전히 일축할 수는 없다.

사제단의 '삼성 금품' 명단 발표와는 무관하게 낙점과정에서 기본적인 검증을 했으리라고 봐야 하는 측면도 있다.

사전 논평 행위 자체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전 논평 내용은 납득할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와 이용철 변호사의 주장을 종합하면 '삼성 금품'은 빳빳한 현찰 뭉치로 조그만 박스에 담겨 전달되곤 했다. 김성호 후보자에 대해서는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금품을 전달했다고 하고, 이종찬 민정수석은 삼성에 직접 와서 휴가비를 받아갔다고 하니까 역시 현찰뭉치가 오갔을 개연성이 높다. 사제단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그렇다.

어떻게 검증할 수 있었을까? 현찰 뭉치가 오갔다면 계좌추적을 해도 추적할 수 없다. 더구나 청와대 관계자 말에 따르면 계좌추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근거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

당사자의 소명을 듣고 그랬을까? 그렇다면 그건 검증이 아니라 청취다. 그것도 일방적인 청취다. 능동적으로 확인한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확인 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런 걸 두고 검증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기자들도 이런 평범한 궁금증을 품지 않은 건 아니다. '돌발영상'을 보면 청와대 출입기자 몇몇이 물어본다. 명단을 어떻게 알고 조사햇는지, 조사방법은 어떤 것이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이동관 대변인은 얼버무린다.

그런데도 단 한 줄 보도하지 않았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오간 질의응답만 그대로 전하기만 했어도 될 일을, 그냥 드러내 국민의 판단에 맡기기만 했어도 될 일조차 하지 않았다.

이동관 대변인이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를 요청했기 때문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엠바고는 미리 보도돼 국가적·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때만 성립된다. 범죄 피의자에 대한 정보나 국가 주요 정책 정보가 그런 예다.

한 발 물러서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엠바고'에 발목이 잡혔다고 인정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사제단 기자회견장에서 사전 논평 사실을 전해들은 수십 명의 기자들은 청와대의 '엠바고'와는 무관하다. 이들이 보도했으면 될 일이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언론은 가장 중요한 계기를 차버렸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실태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대한 매개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봐도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방기행위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을 재검증하려는 의지가, 권력행위를 검증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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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재미 삼아 양념 친 것이겠거니 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을거리를 선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진보지니 보수지니 하는 구분법도, 여당지니 야당지니 하는 케케묵은 분류법도 쓸모가 없다. ‘모든’ 언론이 합창을 한다. 그래서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로 내정된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특사를 두고 ‘모든’ 언론이 스케치한 게 있다. ‘청주 한씨’ 가문의 영광이다.

족보를 줄줄 읊는다. 시조인 한란이란 사람은 “청주의 부호로 고려 개국 때 10만 군사의 군량을 대고 평양성을 쌓는 데 조력한 개국공신”이라고 한다. “광해군 시절 한효순이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했고 영조 때는 한익모가 좌의정을, 고종 때는 한계원이 영의정을 하는 등 10여 명의 정승을 배출한” 가문이라고 한다.

어디 과거뿐인가. 생존 인물 가운데에도 내로라하는 저명인사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모두 ‘청주 한씨’라고 한다.

언론의 족보 찾기는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참여정부의 한명숙․한덕수 총리에 이어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3연속 재상을 배출하는 “기적”을 일궈냈다고 한다. 문중원이 64만 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한 가문에서 3연속으로 총리를 배출했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 총리를 연달아 세 번이나 배출하는 가문이 있겠나”라는 ‘청주 한씨’ 종친회 관계자의 말을 중계한다.

그러면서 다시 촌수를 따진다. 한명숙 전 총리는 문혜공파 34세손, 한덕수 총리는 안양공파 31세손, 한승수 후보자는 몽계공파 31세손이라고 한다.

참으로 퇴행적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족보 훑고 촌수 따지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참자. 더 한 게 있다.

또 ‘모든’ 언론이 보도한 게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한승수 후보자를 발탁한 데에는 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이종사촌 형부라는 점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고 전한다. 이명박 당선자로선 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가 필요했고, 그걸 끌어내기 위해 박근혜 전 대표의 친인척 관계까지 고려했다는 보도다.

기가 막힌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퇴행적이라는 말조차 가볍다. 구태의연한 의식을 구질구질하게 재연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너무 센 지적인가? 그렇지가 않다. 앞서 말한 바를 설명하면 얼추 이해하리라 본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가족관계등록부’가 시행되는 시대다. 부부가 합의만 하면 자녀가 아버지 성이 아니라 어머니 성을 쓸 수 있게 된 시대다. ‘호주’가 사라진 시대다. 지금은….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며칠 전에 나온 뉴스가 하나를 전달하며 마무리한다.

나모 씨란 사람 얘기다. 광주광역시 공무원이었던 나씨는 얼마 전 공문서 변조죄 등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광주 모 구청장과 국무총리에게서 받은 표창장 직급란에 적힌 ‘지방행정주사보’를 ‘사무관’으로 변조해 족보에 올리려 한 게 들통 나 사법처리를 받았다.

두 요소가 우울하게 교차한다. 구청장은 물론 국무총리의 표창까지 받을 정도로 성실했던 공무원 생활, 그런데도 ‘주사보’ 직급이 창피해 ‘사무관’으로 변조하려고 했던 빗나간 의식….

교차로에 서서 생각해볼 일이다.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한승수 후보자 족보 보도와 나모 씨 행위가 진짜 별개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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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1

어제 선배 몇 분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젓가락질 사이로 이런저런 얘기가 쉴새없이 섞여 나왔죠.

한 선배가 말하더군요. 요즘 자괴감을 느낀다고…. 좀 뜨악했습니다. 자괴감을 느낀다는 선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거든요.

귀를 기울였습니다. 웃음과 자괴감의 부조화를 해소시킬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얘기를 듣곤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삼성의 이른바 '떡값'도 받지 못하고, 신정아 씨의 명품 선물도 받지 못하는 자기 신세가 처량하다고 하더군요. 언감생심,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아무리 자기 급이 낮아도 그렇지 에버랜드 입장권 한 장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농담이었습니다. 이른바 '바보 시리즈'를 재생한, 아주 식상한 썰렁 개그였습니다.

60년대에나 통했을 법한 이런 썰렁 개그가 첨단시대라는 지금에도 어김없이 유행합니다. 비리사건이 터지고 로비 리스트가 나오고 '떡값'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나한테는 안 보낸 거야?"

이 썰렁 개그엔 냉담한 시선이 깔려있습니다. 세월이 가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비리 사슬, 로비 커넥션에 대한 염증이 '동승 욕구'라는 전도된 형태로 표출됩니다. 일종의 좌절감과 적대감의 역설적 표현인 셈이겠죠.

#2

점심 식사 자리를 파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비껴 달리는 지하철인지라 곳곳에 빈자리를 남겨뒀더군요.

맞은편 승객을 쳐다보기가 민망해 천장을 올려보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삼성의 이른바 '떡값'과 신정아 씨의 명품 선물은 급이 같은 건가? 몇몇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는 변양균 씨와 명절 때마다 삼성 돈을 받았다는 정관계 인사들은 동급인가?

두 경우 모두 사법부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뭐라 말할 수는 없겠죠. 한쪽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다른 한쪽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돈과 선물을 전달했다고 하니 급이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아직 입에 담을 단계는 아닙니다.

법 논리는 법률 전문가들이 알아서 챙길 테니까 여기선 상식만 갖고 얘기하렵니다. 어쨌든 양쪽 모두 '잘 봐달라'는 뜻으로 돈과 선물을 건넸다면 급은 몰라도 성질은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의아합니다. 신정아 씨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연일 대서특필했고, 어떤 언론은 마치 '권력형 비리'의 단서라도 잡은 양 신정아 씨의 알몸 사진까지 실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웠던 언론이 싸늘히 굳어 버렸습니다.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나에게도 삼성 돈이 전달됐다"며 증거 사진까지 제시했는데도 구겨버립니다. 신문 서너 쪽을 건너 뛰어 정치면 한 귀퉁이에 상자 기사로 박아버립니다. 사진도 싣지 않습니다. 상자 기사 위로는 대선에 골몰하는 정치권의 소식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오늘 신문이 그렇습니다.

도대체 열정이 냉정으로 급변한 이유가 뭘까요? 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합니다. 자기들도 받았으니까 뒤가 구려서, 광고를 의식해서, 판을 키우면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봐 등등 나름의 분석을 내놓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내칠 수 없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더 씁쓸합니다. '보고 싶은 만큼 보인다'는 옛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합니다. 언제부터 진실이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요?

우리 언론에게 진실은 보고 싶을 때만 보는 만화나 영화 같은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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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