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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더 욕된 걸까? 새해 예산안을 직권상정 하는 것과 사상 최초로 준예산 사태를 부르는 것 가운데 어떤 게 더 욕된 걸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 후자다. 전자는 ‘원 오브 뎀’이지만 후자는 ‘최초’다. 직권상정은 김형오 의장 외에도 수많은 국회의장이 선례를 남겼지만 후자는 누구도 테이프를 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전자로 가면 귀 한 번 아프고 말지만 후자로 가면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야가 연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공동으로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김 의장의 ‘입장’에 대해 국회의장실 관계자가 “정 안 될 경우 직권상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의장 만이 아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초의 준예산 사태를 부른 공동정범이란 낙인이 찍히는 점은 차치하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예산안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내년 초에라도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준예산 집행 기간을 하루라도 줄여야 한다. 헌데 문제가 있다. 내년으로 넘기면 처리 여지가 더 좁아진다. 어느 한쪽이 대폭 양보하면 ‘그럼 왜 버텼냐’는 반문이 돌아올 것이고 양쪽이 한 발씩 양보하면 ‘그럼 왜 싸웠느냐’는 핀잔이 날아올 것이다. 어떤 경우든 덤터기 쓰는 불상사를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분석이 나온다. 직권상정과 강행처리 수순이 개시됐다고, 지금 펼치는 여야 협상은 폭풍을 예고하는 살랑바람이라고 풀이한다. 초재기에 몰린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역사적 오명을 쓰지 않으려는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감행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렇게 제야의 종소리와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겹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시나리오가 하나 있긴 하다. 여야가 막판에 한 발씩 양보해 대타협을 이루는 극적 상황이다.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 한나라당이 양보를 하려면 청와대의 동의를 구해야 하지만 그곳에서는 4대강 사업 고수를 재삼재사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 양보할 여지도 없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보의 개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보의 높이와 준설량을 대폭 조정하자는 카드를 꺼내들진 않았을 것이다. 숫자놀음을 하다가 ‘0’을 몇 개 뺀 후 생색내는 게 퇴로 확보 차원에선 더 용이했을 테니까. 한나라당이 양보하는 건 4대강 사업의 전면 수정을 뜻하는 것이고 민주당이 양보하는 건 4대강 반대투쟁의 전면 폐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발 걸쳐보자. 양보와 타협이 실현될지 모른다고 가정하자. 그럼 이렇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사건’이라고….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던 국정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거나 민주당이 스스로 내걸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하니까 ‘사건’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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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민주당에게 물어야 겠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다.

헌법재판소가 방송법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결정을 질질 끌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이 없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정세균 대표가 말했다. 자신들은 그런 경우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28일)에서 “헌재가 쉽게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하긴 어렵다고 본다”고 했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27일)에서 “헌재 재판이 그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확신”이라고 했다.

정세균 대표가 이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의외로 단순하다. “대한민국에 헌재 재판관만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헌법학자, 법조인들도 있으니까”가 근거다.

쉬 부정할 수 없는,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근거이지만 그래도 켕긴다. 듣도보도 못한 ‘관습헌법’을 들고나왔던 헌재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에 정세균 대표의 “확신”이 ‘근거가 부족한 낙관’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그래도 뭐라 할 수 없다. 정세균 대표가 그런 “확신”에 기대어 두손 두발 다 놓고 있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원외투쟁을 병행하겠다고, 국민과의 ‘소통 투쟁’을 통해 미디어법 무효화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근데 묘하다. 국민과 함께 벌이겠다는 무효화 투쟁을 ‘동원’이 아닌 ‘소통’으로 한정했다. “옛날엔 대규모로 동원하는 동원투쟁을 했지만 이번엔 방향을 바꾸자”며 “우리가 국민들을 찾아가서, 거기서 국민과 소통하는 투쟁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맞다. 국민은 대상이 아니니까, 나오라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들어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니까 ‘동원’ 따위의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표현 또한 적절하지 않다. 정세균 대표가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70%가 (미디어법의) 내용도 옳지 않고 (미디어법 처리) 과정도 옳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고, “국민들이 진상을 알기 때문에 옳은 판단을 해줄 것으로 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판을 이렇게 읽고 있다면 정세균 대표가, 민주당이 잡아야 하는 무효화 투쟁의 축은 분산이 아니라 결집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간헐적인' 홍보전에 주력하겠다고 한다. 핀트를 잘못 맞추면서 무효화 투쟁의 수위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뭐라 하지 말자. 민주당에겐 최후의 카드가 남아있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작성해 정세균 대표에게 맡긴 의원직 사퇴서가 있다. 권한쟁의심판을 신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제출을 유보하고 있는 의원직 사퇴서가 있다.

근데 덧없다. 이 카드는 최후의 카드가 아니라 뒷북 카드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흔드는 손 같은 카드다. 헌재가 청구를 기각한 후에 제출해봤자 판을 되돌릴 수 없는 맥 빠진 카드다.

게다가 실제로 제출할 것 같지도 않다. 정세균 대표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에 청구 당사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자신이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눈가림용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김형오 의장이 의원직 사퇴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순순히 의원직 사퇴 건을 의결해줄 리도 만무하다.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한다고 해서 권한쟁의심판 청구인 자격을 당장 잃는 게 아닌데도 정세균 대표는, 민주당은 뭐가 무서운지 가장 약한 수를 택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세균 대표가 한 말이 더 있다. “경거망동할 생각이 없다”며 의원직 총사퇴는 “(현안문제 뿐 아니라)중장기적 과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심각한 변화가 올 때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정세균 대표의 이 말대로라면 의원직 총사퇴는 영영 불가능하다. 그가 설정한 “중장기적 과제”가 하루아침에 풀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수호, 서민경제 회생, 남북문제 개선이다. 

다르게 볼 여지가 없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헌재 결정을 기다리자”는 한나라당의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헌재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팔짱 끼고 있는 것과 투쟁 시늉을 내는 것 정도의 차이다.

부족하다. 민주당은 2%, 아니 20%가 부족하다. 전략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의지 또한 부족하다.

▲사진=민주당이 지난 25일 서울역광장에서 다른 야당·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언론악법 원천무효 규탄대회를 열었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올 오어 나싱 게임’은 없다. 강원랜드 카지노엔 있지만 여의도 정치판에는 없다. 그런 단순무식한 게임은 정치판에선 성립되지 않는다.

미디어법만 해도 그렇다. 8개월간의 기나긴 갈등과정을 통해 드러낼 건 모두 드러냈다.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안기는 대가로 ‘옷벗기’를 요구했고, 앞길을 열어주는 대가로 뒷문을 잠갔다.

하나 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통합노선’의 실체를 드러냈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뇌’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 익히 알고 있거나, 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새로 발견된 사례, 결코 놓칠 수 없는 사례들은 따로 있다.


■ 박근혜의 정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위상은 당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충심을 다 바치는 당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 역할을 하는 건 여권 내 지분싸움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그는 주목받았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이자 지분싸움을 넘어 정책싸움까지 벌이는 것인지,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차별화에 나서는 것인지, 세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난장판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을 일방 처리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그가 말했다.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 대신 여야 난투극이 벌어지는데도, 고등수학은 차치하고 산수만 익혀도 한나라당의 여론독과점 규제제도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그는 눈을 감았고, 그 계파 의원들은 찬성 버튼을 눌렀다.

더불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가 세간의 평가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가 아무리 ‘여당 속의 야당’의 길을 걸으려 해도 힘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의 힘은 계파의 결속을 우려하고 보수 지지층의 비난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계파 의원들이 흔들렸다. 미디어법에 대해 이명박계와 전혀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보폭을 제한해버렸다. 보수 지지층이 반발했다. 이유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미디어법을 흔들고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그의 행보를 비난함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가 ‘산토끼’ 사냥을 멈추고 ‘집토끼’ 건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조중동의 실체
각인됐다. 조중동의 위상이 언론기관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언론기관을 넘어 권력기관화 돼 있다는 사실이 각인됐다. 그들은 정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압도하는 막강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최대 명분으로 내걸었던 일자리 창출이 허구라는 사실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 조작을 기화로 또렷이 밝혀졌는데도 미디어법에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태도를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신방 겸영을 허용하면 혜택을 보는 언론사가 조중동과 한두 개 경제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재삼재사 확인되는데도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만사 제쳐두고 미디어법 처리에 매달리는 모습을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달리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국민의 70%가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대하는데도 일부 극소수 언론사를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처사를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의식하고 있다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청와대와 한나라당마저 의식하고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조중동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더불어 달라졌다. 조중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언론기관으로만 보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된 기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믿고 성원해줘야 하는 ‘파수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반대다. 권력집단까지 쉬 움직이는 절대권력으로, ‘선출된 권력’보다 더 위에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조중동을 바라본다. 그들이 이미 가장 막강 정치집단이 된 것으로 간주한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으로 인식한다. 미디어법이 조중동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민주당의 처지
결정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것이다. 애정을 듬뿍 담아 끌어안을 것인지, 아니면 가차없이 내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에 보여줄 민주당의 태도를 보면서 민주당의 운명을 가릴 것이다.

민주당은 뜨거운 감자였다. 버릴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골칫거리였다. 행적을 봐서는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싶지만 그 당이 승계한 전통과 그 당이 확보한 제1야당이란 위상을 쉬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욕하면서 기대했고, 기대한 끝에 실망하곤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 유보적 관망은 상황이 절체절명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때나 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민주주의의 종언’으로 규정한 마당이다.

민주당의 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의 싸움이 ‘면피성 쇼’인지 아닌지를 가리면서 그들에게 ‘독박’을 씌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의원직 총사퇴를 거론하다가 슬그머니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동반 사퇴로 물러앉는 모습에 기회주의가 담겼는지를 경계하면서, 민주당에 조종을 울릴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 민주의 운명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민주 회복’을 요구하던 길거리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커질지 판명 날 것이다. 길거리를 휘감는 허탈과 분노의 감정이 정치적 저항의 촉매가 될지 아니면 정치적 허무주의의 단초가 될지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누적됐지만 ‘민주 회복’의 성과는 축적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반성과 양보를 끌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정치적 반격과 보복이 등장했다. 길거리에 모였지만 돌아온 건 성과가 아니라 경찰 소환장이었다.

미디어법은 이런 악순환의 정점에서 강행 처리됐다. 미디어법은 ‘민주주의 후퇴’ 우려를 ‘민주주의 종언’ 탄식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중요하다. 미디어법 ‘이후’의 판도에 따라 성취감과 허무주의가 운명을 달리한다. 국민의 정치 참여와 정치 이탈이 좌우된다. 미디어법 ‘이후’의 싸움에 따라 박근혜의 정체와 조중동의 실체와 민주당의 처지 또한 다른 운명을 맞는다. 심판대 위에 오를 수도 있고, 스쳐가는 단상일 수도 있다.

▲사진=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냉온탕을 오가는 게 국회 스텝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눈 씻고 찾아봤지만 없다. 여야 원내대표가 장장 7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기에 혹시 논의가 됐을까 싶어 찾아봤지만 일언반구, 일점일획도 없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이해할 수 없다. '원안 고수'를 주장해온 민주당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반드시 개정'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태도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라며 일분일초라도 빨리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꿩을 구워먹었는지 입을 닫았다.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미디어법에 올인하고 있다.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개정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김형오 국회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체념한 것이라면 미디어법도 일찌감치 접었어야 한다. 그게 일관된 태도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밑밥’이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조문정국을 끝내고, 원외에 머물던 민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정규직법을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정치의안’인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민생의안’인 비정규직법을 멍석으로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오해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왜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처럼 들을지 모르겠다.


정반대다.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법 원안이 뒷전으로 밀리다가 자연스럽게 유지된다면 굳이 성낼 까닭이 없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최선책은 ‘시행 유예’가 아니라 ‘시행 고수’라는 생각을 바꿀 근거가 생기지 않는 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양면성을 새삼 거론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논의를 뒷전으로 밀어놨다가 어느 순간 기습 상정해 처리할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고는 하나 자고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게 우리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행여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파장은 엄청나게 커진다. 쌍용자동차 문제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린 노동계에 휘발유를 붓고 노정 대립을 극한으로 치닫는다. ‘시행 고수’ 분위기를 감지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업주를 다시 들썩거리게 만들면서 노동시장을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는다.

분명히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차제에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개정을 포기한 것인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개정 논의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요구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내놓는 그때그때의 의제에 즉자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입에 올리지 않는 게 비정규직법 개정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오히려 고리를 걸어야 한다. 미디어법 논의가 비정규직법 개정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냐고 한나라당에 묻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게 그나마 의정의 소모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악책이다.

▲사진=6월 30일 비정규직법 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한나라당

Posted by '토씨'

솔직하게 말하자. 없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해 등원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지할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로 작정하면,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작심하면 막을 재간이 없다.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옥쇄전략을 펴는 것이다. 지난해 말처럼 의원 수십 명이 등산용 자일로 몸을 친친 감은 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과 같은 방법 말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어수룩하게 두 번 당할 리 없고, 김형오 의장이 자일의 매듭을 묶을 시간적 여유를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미디어법 저지를 명분으로 등원을 결정했다. 등원을 결정함과 동시에 본회의장 앞 농성을 풀었다. 패착일까? 한나라당에게 처리 명분과 본회의장 진입로를 동시 헌상한 ‘본헤드플레이’일까?

이렇게 평하기는 어렵다. 정반대의 상황, 즉 등원을 거부하는 상태를 지속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처리 명분을 뺏고 본회의장 진입로를 틀어막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다른 명분, 즉 ‘파업 벌이는 야당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앞세워 일방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앞으로 넘어지나 뒤로 넘어지나 코가 깨지기는 마찬가지라면 코피라도 제대로 흘려보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의사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상황 변화를 유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처참하게 당해주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합당하다. 의사일정 지연전술을 통해 한나라당의 ‘독선’을 부각시키고 처참한 패배를 통해 한나라당의 ‘독판’을 각인시키자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온당하다.

이렇게 보면 분명해진다. 민주당의 전략은 사전적 차원의 옥쇄가 아니라 사후적 차원의 옥쇄다. 국회의사당 내에서의 맞바람이 절대열세이기에 국회의사당 밖에서의 역풍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석이 아니라 여론으로 막판 뒤집기를 이루려는 것이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이후의 역풍과 같은 대반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떨까? 민주당의 이런 전략은 먹혀들 수 있을까?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저지에 나선다는 전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전제를 설정하면 관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다. 국민이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이명박 정부의 숱한 독주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독주를 집약해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이다. 국민이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 지배를 여론시장 내의 미세 조정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여론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새판짜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방송의 위축에 대한 국민의 우려심이다. 국민이 방송의 위축을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위축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결정적 위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르지만 같은 얘기다. 몸통은 하나인 얘기다. ‘민주’라는 화두에 얽힌 문제다. ‘민주’ 구호에 미디어법 사례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문제다. 

▲사진=민주당이 12일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단,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갖고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데드라인이 설정됐다. 13일이다. “야당과 미디어법 내용 등에 관한 논의는 13일로 끝내고 이후에는 본회의 처리수순을 밟겠다”고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이 못박았다.

어떨까? 실제로 밀어붙일까?

전망이 대체로 같다. 또 하나의 쟁점법안인 비정규직법은 몰라도 미디어법은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이 전망한다.

이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든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국회에서 ‘6월 표결처리’를 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만큼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드는 건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다. 비정규직법 강행처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지만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소장 개혁파조차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물 건너간다고 말하는 점을 중시한다. 전열이 정비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분석을 그대로 받으니까 궁금해진다. 한나라당이 유독 미디어법에 대해 자신하는 이유가 뭘까?


힌트는 한나라당 원내 핵심당직자가 했다는 말에 숨어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으로 단독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미디어법의 경우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고 사회적 파장이 크지 않다는 얘기, 다시 말해 강행처리해도 후폭풍이 거세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해할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여론은 미디어법 처리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소간의 수치 차이는 있지만 대세는 ‘강행처리 반대’, 나아가 ‘한나라당 미디어법 반대’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도대체 이렇게 낙관하는 근거가 뭘까?

두 마디 말이 있다. 나경원 의원과 진수희 의원의 말이다.

나경원 의원이 말했다. 6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디어법에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진수희 의원이 말했다. 지난 6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여의도연구소의 미디어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하면서 나경원 의원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디어법이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목적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40.4%,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45.9%였으며, 미디어법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43.6%, 명칭만 들어봤다는 응답이 49%였다고 보고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실상 미디어 법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지 이 조사에선 분간할 수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뭘 모른 채’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야당의 선전에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진리는 끝내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곱씹을 대목이 있다. 두 의원의 발언이 ‘국민 무시’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씹고 또 씹어야 할 다른 포인트가 있다.

두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이 믿고 있다. 미디어법을 “언론장악이라는 프레임(나경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진수희)”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믿고 있다.

또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은 미디어법 처리를 ‘민주’의 시금석으로 이해한다.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되면, 그래서 재벌과 조중동에 방송 소유와 경영의 길을 터주면 여론이 독점되고 다양한 의사표현의 길은 막힌다고, 결국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린다고 우려한다.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다. 한나라당이 공언한 대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면 어느 하나는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허구의 프레임’이 걷히면서 ‘민주주의 요구’가 한풀 꺾이든지, 아니면 근거없는 낙관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민주주의 요구’에 기름을 붓던지…. 아, 하나 더 있다. 비록 부차적이지만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린다. 강행처리 저지의 결기와 실천력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림길에 놓인다. 

예단은 하지 말자. 두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경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내다보지는 말자.

현실은 여러 요인의 분자운동에 의해 움직인다. 미디어법 또한 그런 환경에 노출돼 있다. 비정규직법을 매개로 미디어법을 국민 시선에서 떼어놓은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전략’을 무시할 수 없고, 미디어법 처리를 ‘결사저지’하는 과정에서 보일 민주당의 ‘부서지는 모습’이 국민을 어떻게 움직일지 또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는 아직 전반전 종료 휘슬도 울리지 않은 상태다.

▲사진 = 국회 문방위 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는 민주당 의원들 ⓒ민주당

Posted by '토씨'

개헌 논의는 순항할 수 있을까? 김형오 국회의장의 말처럼 개헌 논의를 제헌절에 시작해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끝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가능하지 않다.

언론이 이명박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 언급에 대해 갖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을 때마다 청와대가 밝혔다. “근원적 처방”에 개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그러면 레임덕이 빨리 와 안 된다고 했다. 이게 근거다. 

청와대가 비틀면 꼬인다. 개헌 논의가 꼬이고 개헌 내용이 꼬인다.

현재 정치권이 운위하는 것처럼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개편하려면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양보다. 자신의 임기 가운데 1년 가까이를 내놓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대선과 총선 주기를 일치시킬 수 있고, 그래야 4년 중임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강구할 수 있다(물론 개헌을 하되 그 적용을 차차기로 미루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지만 현실타당성은 극히 떨어진다).

헌데 기대난망이다. 청와대의 입장을 봐선 이명박 대통령이 인심 좋게 임기를 뚝 떼어 줄 것 같지가 않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누르는’ 것이다. 힘을 동원해 그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는 것이다.

이러려면 또 다른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상황, 즉 레임덕이 가시화 돼야 한다. 그래야 한나라당 의원들이 청와대를 압박하면서 개헌 논의에 동참할 수 있다.

배제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이 이같이 반기를 드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 안에 ‘이명박의 덫’에 갇혀 권력재창출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유포된다면, 나부터 살고봐야 겠다는 절박감이 만연한다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아니다. 이런 상황이 도래한다 해도 그 시점이 김형오 의장이 설정한 개헌 데드라인, 즉 내년 지방선거 전에 나타날 공산은 거의 없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를 가를 것이라는 일반적 예측에 따르면 그렇다.

개헌의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여권 구도만 놓고 봐도 이렇게 첩첩산중인데 김형오 의장은 한술 더 뜬다. 개헌이 권력구조만 손대는 ‘원 포인트 개헌’으로 한정되는 것을 반대한다. “원 포인트 개헌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면 더 어려워진다. 김형오 의장이 강구하는 ‘현실적인 개헌’이 권력구조 개편에서 더 나아가 경제·환경·정보·북한 등과 관련된 조항까지 손대는 ‘포괄개헌’을 뜻하는 것이라면 개헌 논의테이블은 거대한 그리고 격렬한 난투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념과 입장에 따라 정파가 갈갈이 찢겨 멱살잡이를 하는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개헌 논의를 제헌절에 시작해 내년 지방선거 전에 끝낼 수 있을까? 이런 개헌 논의가 분열된 국론을 통일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사진=김형오 국회의장 ⓒ김형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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