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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참패했다. 반MBㆍ반한나라당 정서를 강화할 호재가 여럿 돌출됐는데도 패배했다. 후보 단일화를 이뤘는데도 주요 전략지역에서 패배했다.

민주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입을 열어봤자 곡소리 밖에 낼 수 없는 처지에 빠져버렸다. 어쩔 수 없다. 입을 꾹 다물고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환골탈태에 나서는 것이다. 헌데 난감하다. 환골탈태를 하고 싶어도 할 여지가 별로 없다.

체질 변화는 불가능하다. 당 체질 성분인 의원 면면에 문제가 많지만 손 댈 수가 없다. 국민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기에 가타부타 논할 수가 없다.

노선 변화는 효과가 없다. 진보 색채와 대여 선명투쟁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해봤자 곧이들을 국민은 많지 않다. 철마다 옷 바꿔 입는 것처럼 국면이 바뀔 때마다 ‘대안’과 ‘선명’ 사이에서 그네 타기를 했던 민주당이기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을 판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폼 나는 방법은 지도부 교체인데 이 또한 한계가 뚜렷하다. 어차피 정세균ㆍ정동영ㆍ손학규 3파전으로 전개될 당 대표 경선이다. 자기들끼리야 치열하게 싸우겠지만 국민이 보기엔 밥과 나물의 싸움이다. 그네들끼리의 당권경쟁은 비빔밥에 밥을 더 넣을지 나물을 더 넣을지의 차원 밖에 되지 않는다. 별별 레시피를 다 써도 어차피 결과물은 비빔밥이다.

하긴 이렇게 짚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쇄신결핍증이 중증에 이른 민주당에 특효처방을 주문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어차피 현실적인 방법은 소걸음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되 굳세게 내딛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소’ 역할을 할 것이냐는 점이다.


유일한 대안은 개혁 성향 의원들이다. 가뭄에 콩 나듯 여기저기에 산개해 있는 몇몇 의원들이 그나마 대안이다. 이들이 나서서 당 쇄신을 요구하고 당 밖 개혁세력과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당 체질 개선을 위한 문호 개방을 선창하고 문지기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당 노선 변화를 위한 선명투쟁을 주창하고 선봉대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헌데 이들은 뭉치지 않는다. 한나라당조차 중립파니 쇄신파니 해서 바람을 잡고 감초 역할을 하는 의원들이 뭉쳐 있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이조차도 하지 않는다. 개별 플레이를 하거나 주류 또는 비주류로 갈려 묻어가고 있다. 당 대표 경선 결과에 따라 당권 향배가 달라지고, 당권 향배에 따라 자신의 입지가 달라지는 점을 고려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주변 경계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거듭 확인한다. 민주당의 쇄신결핍증이 중증에 이르렀음을 이들을 통해 거듭해서 확실하게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떨치지 못한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끝끝내 버리지 못한다. 이마저 버리면 민주당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공간이 열렸기 때문이다. 7.28재보선 참패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쇄신 공간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과 비판은 적지 않았지만 결정적 계기는 없었다. 민주당이 2008년 총선 이후 치러진 각종 재보선에서 최소한 ‘기본’은 했기에 쇄신 움직임이 본격화할 계기와 동력은 완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누가 봐도 명백한 민주당의 패배이니까 쇄신 깃발을 들 이유와 동기는 뚜렷하다.

지켜볼 일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아니라 개혁 성향 의원들의 동태를 지켜볼 일이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기대치와 대처법이 달라진다.

▲ 민주당 최고의원회의 장면.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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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전 MBC 사장은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자신이 강원도에서 재보선에 나선 한나라당 후보 두 명을 잇달아 찾은 건 개인적 친분 때문이었다며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설프다. 특정 정당 후보를 찾아가 격려를 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것인데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었다”고 손사래 친들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은 상대방의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법이다.

그래서 엄기영 전 사장의 말보다 강원도 현지에서 전해지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다. 한나라당 후보 선거운동원이 했다는 말이다. “지역에선 (엄기영 전 사장이) 강원지사를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말이다.

이 말에 따르면 엄기영 전 사장의 ‘개인적 격려’는 ‘도장 찍기’이자 ‘간보기’다. 한나라당 후보 격려를 빌미로 강원 주민에 ‘얼굴도장’을 찍고 현지 여론을 떠보려는 행위다.


묻지 말자. 이광재 강원지사에 대한 상고심은 아직 개시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몸을 푸냐고 되묻지 말자. 정치 경쟁력은 순간의 기회와 조그만 틈새를 낚아채는 데서 좌우된다고 하니까 엄기영 전 사장은 정석 플레이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또한 묻지 말자. 강원지사에 출마해도 왜 하필 한나라당 후보냐고 되묻지 말자. 6.2지방선거에서 분 이광재ㆍ민주당 바람은 일시적인 것일지도 모르니까, 강원도는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었으니까 엄기영 전 사장은 길게 보고 튼튼한 동아줄을 잡으려는 건지도 모른다.

정색하고 물어야 할 건 엄기영 전 사장의 출마 전략이 아니라 출마 정당성이다.

엄기영 전 사장이 정말 출마한다면 그는 두 가지 도리를 어기게 된다.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MBC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고, 언론계의 공감대를 팽개치는 것이다.

엄기영 전 사장의 사퇴로 촉발된 MBC 사태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노조위원장은 해고됐고 노조 조직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사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엄기영 전 사장이 정치 행보를 그으면 MBC노조가 ‘조인트’를 맞는다. 정치적 사유로 사장직에서 밀려났다고 평가되는 사람이 그런 정치 외풍에 항의하고 항거하기는커녕 가해 집단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정당에 의탁하면 MBC사태가 블랙 코미디가 된다. MBC 사장 출신이, 그것도 정치적 외풍 때문에 사퇴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방송 독립 저해 요소의 인자가 되면 방송 독립을 외치는 MBC 후배들의 목이 쉰다. 

그가 민주당에 몸을 의탁해도, ‘야당 투사’가 되어 방송사에 대한 정치 외풍 차단에 나서겠노라고 선언해도 시선이 곱지 않을 판이었다. 방송 독립은 정치적 방법이 아니라 방송 본연의 정신과 터전 위에서 구현하는 것이기에 그의 정치 명분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언사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판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엄기영 전 사장이 정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면 그는 또 하나의 윤리를 어기게 된다. 언론인의 직업윤리다. ‘폴리널리스트’의 폐해가 극심한 점을 감안해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더라도 2~3년의 유예기간을 두자는 언론계의 공감대를 팽개치는 것이다. 

뒤를 보고 앞을 봐도 마찬가지다. 엄기영 전 사장이 한나라당 강원지사 후보가 되면 그는 어떤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다. 은퇴 대안형 출마, 노후 대비용 출마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개인적인’ 출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진= 엄기영 전 MBC 사장이 2월 8일 사퇴 의사를 밝힌 후 방문진 이사회가 열린 롯데호텔을 떠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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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한심하다. 촌티를 내도 너무 심하게 낸다.

광주 출신 의원 4명과 시의원 20여명이 떼로 모여 비난했다. 민노당을 향해 “한나라당 2중대”를 운운하더니 급기야 ‘대안 없는 반미정당’이란 욕까지 해댔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민주당마저 색깔론을 편다고 혀를 차지만 그게 아니다. 색깔론 밖에 못 펴는 게 더 큰 문제다. 진심 토로이든 정치 수사이든 기껏 내놓는다는 게 색깔론 외에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촌티 난다고, 한심하다고 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이 다 안다. 민주당 사람들이 안면몰수하고 민노당을 욕한 건 위기감 때문이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의 단일 후보인 오병윤 민노당 후보가 장병완 민주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자 행여 질까봐 네거티브 공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헛짚었다. 만취한 취객이 남의 집 초인종을 요란하게 눌러대는 것처럼 엉뚱한 지점에서 악을 쓴 것이다.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이런 곳에서 민주당이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선거판세가 초접전으로 나온다면 이는 뭘 뜻하는 걸까? 자명하다. 광주 남구 유권자가 ‘민주당 이상의 무엇’을 갈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변화, 발전, 진보를 염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심리를 민노당 후보에 투영한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상의 무엇’이 아니라 ‘이하의 무엇’을 꺼내들었다. 발전이 아닌 퇴행, 진보의 가치가 아닌 수구의 녹슨 칼을 꺼내들었다. 유권자는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민주당은 후진 기어를 넣은 것이다.

여기서 확인한다. 민주당은 예리하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ㆍ민심 흐름을 포착할 정도로 정밀하지 못하다. 민주당은 창의성이 없다. 흔하디흔한 정치구호 하나 뽑아낼 창작력이 없어 흘러간 옛 노래를 리메이크 한다. 민주당은 부지런하지 않다. 머리가 나쁘면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벼락치기조차 하지 않은 채 커닝을 감행한다. 더 간단히 말하면 민주당은 무능하다. ‘한나라당 이상의 무엇’을 제시할 능력은커녕 한나라당의 A형 답안지를 자신의 B형 답안지에 베껴 쓸 정도로 둔하다.

아무튼 잘 된 일이다. 유권자에게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잘 된 일이다. 유권자에게 민주당의 변화를 강제하든지, 변화 없는 민주당을 버리든지 양자택일 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잘 된 일이다.

머지않은 일이다. 광주 남구 재보선 결과에 따라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으니까 목전의 일일 수 있다. 민주당의 운명이 광주에서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사진=광주 출신 민주당 의원들과 시의원들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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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정부 고위당국자’가 말했단다. ‘진보적인 젊은 애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냈단다. “(6.2지방선거에서)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를 얘기하면서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고 해 거기에 다 넘어갔다”면서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했단다.

뒷말은 놀랍지 않다.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는 말은 그닥 놀랍지 않다. 길거리 보수파가 걸핏하면 합창하던 말이기에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고위당국자의 사고와 어법이 저잣거리 수준이란 사실이 눈길을 끌긴 하지만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다.

새롭고 놀라운 건 정신 상태다. “젊은 애들”의 “정신 상태”를 한탄한 그의 정신 상태가 놀랍다.

“젊은 애들이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고 해 거기에 다 넘어갔다”는 그의 말은 명백한 도발이다. 주권자의 선택을 정면에서 비웃고 폄하한 발언이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 한다”는 그의 말은 명백한 일탈이다. 정치와 선거에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의 의무를 정면에서 부정한 발언이다.

말실수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뒷머리 한 번 긁적이고 넘어갈 사안 또한 아니다. 탄핵 받아 마땅한 사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 그랬다. 한나라당이 탄핵소추를 주도하면서 내건 사유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국법질서를 문란케 한 점’과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한 점’이었다. 전혀 빠지지 않는다. 고위 당국자 또한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해 국법질서를 문란케 했고, 주권자의 선택을 폄하해 국정 수행의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으니 정치적 탄핵을 당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고위당국자의 말대로 “나라로서의 체신이 있고 위신이 있고 격이 있(기에)”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본인이 사과하고 사퇴하지 않으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라도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 국체에 반하는 발언을 한 고위당국자를 그냥 두면 나라로서의 체신과 위신과 격이 떨어지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하면 그걸 지키는 희생도 해야 하(기에)”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꽃인 국민 투표 결과를 사실상 부정한 고위당국자의 망언을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지방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청와대, 그리고 젊은층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입장에 재를 뿌리는 발언이니까 그리 하는 게 마땅하다.

“(고위당국자의)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하(니까)”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서라도 물러나게 해야 한다. “젊은 애들” 아니 국민의 정치적 선택이 그렇게 싫으면 따로 살게 해야지 별 수 있겠는가. 조용히 짐 싸도록 하는 게 그를 위해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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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 파문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친박계가 잠잠할까 하는 의아심이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 불법사찰의 주체가 넓어지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이어 국정원(정두언 사찰)이 등장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정부의 모 기관’(정태근 사찰)까지 등장한다. 불법사찰의 대상 또한 넓어지고 있다. ‘친노’에서 ‘반 이상득파’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문제제기는 상식을 획득한다. 사정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반 이상득파에 대해 불법사찰을 할 정도면 친박계에 대해서는 오죽했을까 라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고도 남을 만하다.

정황도 있었다. 세종시 갈등이 꼭짓점에 이르렀던 지난 2월 홍사덕 의원은 “의원 누구에 대해 마치 무슨 흠이 있는 듯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위협을 한다”고 주장한 바 있고, 이성헌 의원도 “박근혜 전 대표가 모 종파의 스님과 식사를 한 뒤 정부기관에서 스님을 찾아와 내용을 캐물었다고 한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도권의 한 친박 의원은 “나도 사정기관 쪽에서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세종시 원안 추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4~5명의 의원들이 뒷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친박계는 입도 벙긋 안 한다. 사찰 당하고 핍박 받는 계파 이미지를 부각하고도 남을 법한데 입을 씻고 있다. 오히려 거꾸로다. 이성헌 의원이 불법사찰 내용을 민주당에 제보한 당사자로 김유환 총리실 정무실장을 지목하면서 힐난했다.

이유가 뭘까? 계파 수장마저 뒷조사를 당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불법사찰을 근절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이유가 뭘까?

말 그대로 강 건너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친이계 내부의, 자기네들끼리의 싸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법사찰은 광범위했으나 불법사찰 파문은 친이계 내부 분란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친이계 내부의 수도권라인과 영남라인이 치고받고 하다가 양패구상할 때까지 지켜보는 게 쏠쏠하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확대 해석한다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법사찰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쪽은 이상득 의원을 필두로 하는 영남라인인 반면 기세를 잡은 쪽은 수도권 라인이다. 친박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이 궁지에 몰린 반면 상대적으로 강경한 쪽이 기세를 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가 불법사찰 문제를 정면에서 거론해 파장을 키우면 결과적으로 경쟁그룹의 입지만 키워준다.

친박계로선 지켜보고 기다리는 게 낫다. 검찰이 수사한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의 속살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끝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간주한다면 사생결단하는 것보다 어부지리를 취하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이라고 판단할 만하다. 괜히 나섰다가 친박계의 뒷조사 내역이 시시콜콜 드러나는 것보다 그게 이윤을 백 배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검찰이 끝을 보지 못한 문제이고, 그래서 특검제 도입 문제까지 나오면서 내연상태로 오래 지속될 문제가 불법사찰 건이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친이계의 갈등과 분화를 지켜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친박계가 주도권을 거머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친박계가 친이계와,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대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법사찰 문제를 다시 꺼내들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보면 불법사찰 문제는 친박계에게 꽃놀이패다. 아껴둘수록 쓰임새가 높아지는 꽃놀이패 말이다.

▲사진=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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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태도가 자못 준엄하다.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대변인은 “성희롱을 넘어 성폭력에 가까운 발언으로 낯뜨겁고 충격적”이라고 개탄하고, 윤리특위 의원들은 국회 윤리특위에 징계요구안을 제출하겠다고 벼른다.

당연하다. 여야를 떠나 건전한 상식을 가진 공당이라면 응당 보여야 할 태도다. 헌데 하나가 빠졌다. 최소한의 염치가 빠졌다.

민주당 소속 이강수 고창군수 또한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군청 계약직 여직원에게 “누드사진 찍어볼래?”라고 말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단순한 의혹이 아니다. 여직원 가족들이 의혹을 뒷받침하는 녹취록까지 제시한 상태다. 그런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들보’는 째려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는다.

지난 3월이었다. 민주당은 성추행 전력자인 우근민 제주지사를 복당시켰다가 어떻게 성추행 전력자를 복당시킬 수 있느냐는 당 안팎의 비난에 봉착했다. 이 때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가 주장했다. “8년이나 지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우근민 지사는 여전히 성추행을 한 적이 없다고 펄쩍 뛰던 점을 감안할 때 사건은 ‘8년 전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일’이었는데도 민주당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월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근민 지사가 탈당한 지 한 달여만인 4월에 민주당은 이강수 고창군수를 공천했다. 공천 넉 달여 전에 “누드사진 찍어볼래?”라고 말한 그 사람을 버젓이 공천했다. 우근민 파동을 겪었는데도 또 다시 성희롱 의혹 당사자를 공천한 것이다.

물론 감안할 점은 있다. 피해자 가족이 성희롱 의혹을 민주당에 처음으로 제기한 건 공천이 확정된 후인 5월 2일이었다. 그러니까 공천 사실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민주당은 사건을 접수한 후 고창 현지에 진상조사단을 보냈다. 일단 형식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는 거쳤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평가는 바뀌지 않는다. 민주당이 이강수 군수에게 내린 조치는 ‘주의’였다. “고창군수가 말을 실수한 건 맞지만 고창지역 분위기로 볼 때 심각하게 징계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경징계에 그쳤다. 이강수 군수가 성희롱 발언을 한 건 인정했으면서도, 피해자가 수치심과 모욕감에 몸을 떨고 있었는데도 ‘고창지역 분위기’라는 해괴한 이유를 대며 공천을 취소하지 않았다. 

백 번 양보해서 볼 수도 있다. 그 때는 한 자리가 아쉬웠을 거라고, 지방선거 승리를 낙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임에 성공했던 현직군수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건 역지사지 축에도 끼지 못하는 ‘묵인’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두 눈 질끈 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백 번 아니라 천 번을 양보해도 민주당이 지금 보이는 태도만은 이해할 수 없다. “성희롱을 넘어 성폭력에 가까운 발언”을 한 자당 소속 군수에게 준엄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처사, 강용석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하려는 원칙적 태도를 자당 소속 군수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처사만은 이해할 수 없다. 어제까지 민주당은 공식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이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우근민 논란이 전개될 때 정세균 대표가 한나라당을 향해 한 말이다. 한나라당도 우근민 지사를 영입하려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정세균 대표가 한 말이다. “한나라당은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주어만 바꾸면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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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강용석 의원이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라고 말한 것이나, 이강수 고창군수와 박현규 전 군의회 의장이 계약직 여직원에게 “누드 사진 찍어볼래?”라고 말한 것 모두 놀랍다. 발언 수위와 강도가 ‘초절정’이어서 놀랍다. 한두 번 보고 들은 추문이 아닌데도 여전히 놀랍다. 

헌데 더 놀라운 게 있다. 성희롱을 벌인 상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맨 정신이었다. 강용석 의원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 국회의장배 전국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대학생 20여명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쏟아낼 때 그는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강수 군수와 박현규 전 의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여직원을 희롱할 때는 백주 대낮이었고 장소는 의장실이었다.

따로 짚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 것이다. 술에 취해 엉겁결에 한 짓이 아니라(물론 이 경우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맨 정신에 버젓이 일을 저지른 이유를 살펴야 한다.

같다. 강용석 의원이나 이강수 군수ㆍ박현규 전 의장 모두 우월적 위치에 있었다. 강용석 의원은 토론대회 심사위원으로서 토론대회 참가자들을 만나고 있었고, 이강수 군수와 박현규 전 의장은 인사권자로서 여직원을 대하고 있었다. ‘벼슬’ 하나만으로도 목에 기브스를 할 정도인데 여기에 심사권한과 인사권한까지 추가됐으니 이들의 태도가 어떠했겠는가. 이들은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비하했을 뿐만 아니라 강자의 위치에서 약자를 괴롭혔다.

한 가지 점을 더 짚자. 성희롱 당사자들의 소속이다. 강용석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이고 이강수 군수는 민주당 소속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여야가 따로 없을 뿐만 아니라 경계도 따로 없었다. 한나라당은 자당 소속이었던 최연희 의원이 여기자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후에도 따로, 제대로 경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당의 간판에 먹칠을 했다. 민주당은 여직원 가족이 지방선거 전에 군수 등의 성희롱 사실을 제보했는데도 따로,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채 공천장을 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당의 이미지에 얼룩을 묻혔다.

한국 정치를 이끈다는 두 거대 정당의 윤리실태가 이 지경이다. 뒷문을 잠그지 않았다. ‘만사불여튼튼’의 태세를 갈고 닦아도 부족할 판에 제기된 문제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추문이 터지는데도 ‘근원적 처방’을 내놓기는커녕 성추행 의원 복당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한국 정치 단면이 이렇고, 한국 정치인의 단편이 이렇다.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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