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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두 말을 비교하자. 이 작업을 끝내야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대운하 사업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 - 2008년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
▲(대운하 사업을) 내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 - 2009년 6월 29일 라디오연설

다른가? 두 말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가?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호평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를 특정함으로써 대운하 포기 의사를 좀 더 분명히 밝혔다고 상찬한다. 그러니까 이제 대운하 논란은 접자고 당부한다.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읽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로 한정함으로써 “임기 후”의 여지를 확보한 측면이 있고,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내 믿음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대운하 사업의 정당성을 확인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련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그러지 않았는가. “의구심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말라고…. ‘꼬투리 잡기’로 욕먹을 수 있으니까 관두련다. 하지만 이 점만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의했다. 대운하 사업의 핵심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의를 확장해 적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일만 하지 않으면 4대강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든 그건 대운하 사업이 아닌 게 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운하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일은 ’의구심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쟁을 일삼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에서 보를 필요 이상으로 건설해도, 그 보의 숫자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도 그건 단순한 물놀이용 보여서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에서 바닥을 필요 이상으로 긁어내도 그건 강의 수량을 풍부히 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며 이걸 선박 운항과 연결 짓는 건 오해 또는 의구심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라고 믿고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 피해액을 마구 부풀려도 그건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단순 계산착오라고 믿고 입 닫아야 한다. 행여 입을 열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다시 말해 대운하와 연결 짓는 건 피해야 한다.

어떤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합리적 의심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제압당하는, 기적과도 같은 전도현상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설정한 프레임에 객관적 사실이 갇히는, 기막힌 왜곡현상을 목도할 수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4대강 사업이 ‘언터처블’이 되지 현상을 체감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잘못됐다. 주어가 잘못됐고 시제가 잘못됐다. 합리적 의심이 “제압당하는” 중도 아니고, 객관적 사실이 “갇히는” 중도 아니며, 4대강 사업이 “언터처블이 되는” 중도 아니다. 그건 단지 청와대가 뇌리 속에서 그리는 현재진행형의 희망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일각, 즉 합리적 의심과 객관적 사실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 가운데 일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장단 삼아 춤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라디오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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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한나라당 쇄신특위 위원장이 그랬다. 지난 11일과 12일에 잇따라 말했다. “국정쇄신과 당 쇄신 중에 본질은 국정쇄신”이라고 했고, “자기 자신을 버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당과 국정운영이 국민의 여망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게끔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고 했다. 국정 쇄신과 당 쇄신 사이에서 오락가락 한다는 비판이 비등하자 내놓은 발언이 이랬다.

근데 다르다. 이때의 말과 지금의 행동이 다르다.

쇄신특위가 미루기로 했단다. 쇄신안을 마련했지만 비정규직법 처리 문제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쇄신안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절차를 미루기로 했단다. “비정규직법 처리가 (여권의) 최대 현안이자 관심사”라는 이유 때문이란다. “여야가 비정규직법 처리를 두고 국회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쇄신특위가 당내 분란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유란다.

어이없다. 쇄신특위의 궁극적 목표가 국정쇄신이라면서 최대 국정사안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다. 당의 전열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애당심’에 입각해 최대 국정 사안에 뒷짐 진다.

백번 양보하자. 말은 저렇게 해도 심저엔 크고 넓은 확신이 깔려있다고 인심 좋게 받아들이자. 비정규직법 처리를 놓고 여야3당과 양대노총이 5인 연석회의를 벌이고 있으니까, 이 테이블에서 합의를 도출하면 대화 타협 소통의 전형을 창출하는 거니까, 그러면 국정쇄신의 모범이 탄생하는 거니까 기대감에 부풀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자.

그럼 이건 어떨까? 미디어법 말이다.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다. 국민의 70% 이상이 미디어법의 일방처리에 반대하고, 국민의 60% 이상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MBC 조사). 국정의 정책기조와 운영기조 모두 반대하는 게 “국민의 입장”이고, 국정의 정책기조와 운영기조 모두를 바꾸라는 게 “국민의 여망”이다.

그런데도 말이 없다.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미디어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재삼재사 다짐하는데도 일언반구 말이 없다.

혹시 개별 정책사안은 쇄신특위의 논의 사항이 아니어서 그럴까? 쇄신특위는 국정운영의 설계도를 그리고 당운영의 조감도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하는 기구여서 그럴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쇄신특위에서 ‘부자 감세’에 대해 논의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던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묻는다.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연 다음에 묻는다.

‘원희룡 위원장님, 어디서 뭐 하세요?’

저기 멀리서 희끗하게 보인다. 원희룡 위원장의 뒷모습이 살짝 보인다.

쇄신특위가 설문조사를 했단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상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실용론’에 대한 의견을 물었단다. 그 결과 응답자의 88.1%가 ‘청와대의 중도실용주의 국정 운영기조 재정립’에 ‘공감’했단다. 이를 두고 쇄신특위는 “쇄신특위의 쇄신 방향 및 문제의식과 상당부분 일치했다”고 평가했단다.

 ▲사진=원희룡 의원이 지난 2일 쇄신특위 6차회의 결과를 브리핑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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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한다. ‘동아일보’가 품을 적잖이 들인 점은 인정한다.

22년 전 기사를 뒤졌다. 색 바랜 신문에 침을 바르고, 필름통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찾아냈다. 1987년 6월항쟁 전후의 ‘경향신문’ KBS·MBC 보도를 들춰냈다. 정권에 아부했고 시민에 등 돌렸던 세 매체의 과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해한다. ‘동아일보’가 세 매체의 과거사를 들춰낸 이유를 이해한다. 경멸과 냉소를 가득 담아 ‘너희가 언제부터 민주언론 진보언론이었는데?’라고 되묻기 위해서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세 매체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6.10민주회복범국민대회’를 6월항쟁 정신과 연결한 것을 문제 삼으며 “최근 6.10범국민대회와 관련해 민주주의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것은 지난 일을 모른 체하는 행태”라고 했다.


이런 식의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6월 15일자 ‘황호택 칼럼’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6월 10일만 되면…제철을 만난 듯 지면에 활기가 넘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경향신문’과 KBS·MBC는 ‘관제언론’을 하고 있었던 반면에 ‘동아일보’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6월 민주항쟁에서 선두에 서서 붓으로 싸웠다고 했다. 이렇게 “과거사를 들추는 이유는 우리 자랑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제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들춰낸 과거사는 사실에 부합한다. KBS와 MBC는 분명 ‘관제언론’이었다. ‘땡전뉴스’의 첨병으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중에 6월항쟁의 주역이 된 ‘일부 극소수 불온세력’을 성토하는 ‘보도특집’을 방송하곤 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5공 시절에 ‘경향신문’이 전두환 세력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놨다는 기록을 찾기는 힘들다. ‘동아일보’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고, 민주언론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과거사 들추기를 인정하지 못한다. 동의하지도 않는다.

‘동아일보’는 자충수를 뒀다. 헛심 쓰면서 헛물만 켰다. 두 개의 반문을 끌어내는, 누워 침뱉기식 우를 범했다. 이런 것이다.

첫번째 반문은 ‘그럼 너희는?’ 이다. 그럼 ‘동아일보’의 과거사는 그리 떳떳하냐는 반문이다. 회고 시점을 22년 전에서 일제강점기로 확장하면 ‘친일’ 전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역사학계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두번째 반문은 ‘그랬던 너희는?’ 이다. 22년 전 민주항쟁의 선봉에 섰던 ‘동아일보’가 지금은 어느 세력의 선봉에 서 있느냐는 반문이다. 각계각층이 민주주의 후퇴 또는 위기를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데도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옹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반박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미 반박하고 있다. ‘친일’ 전력 주장은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시대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공과 과를 두루 아우르지 못한 단견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부여한 자유를 좌파세력이 악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따로 재반박하지는 않으련다. 그래봤자 평행선을 달릴 뿐이니까….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내놓은 논란의 해법을 상기하고 환기시키련다.

‘황호택 칼럼’이 그랬다. “어떤 신문의 논조가 옳고 그른지는 독자의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도 했다.

이 ‘훈계’를 받들어 ‘동아일보’에 권한다. 스스로 설정한 금도를 자신에게 적용시키기를 권고한다. 역사의 평가는 차후의 일이니까 그렇다치고 당대의 독자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고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살피기 바란다. 정말 일부 좌파세력만이 ‘동아일보’를 공격하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또한 한 때의 영광을 우리고 또 우리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 보기 바란다.

세상사 이치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 나가 “우리 집안은 삼정승 육판서를 배출한 명문가라오”라고 하면 “그래요? 그럼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는데요?”라고 반문하는 게 세상 인심이고 시대 정서다.

▲‘동아일보’ 6월 26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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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 찬성한다. ‘대한늬우스-4대강 살리기’는 맘껏 틀어야 한다. 전국 52개 극장 190개 상영관에서 하루 5번씩 한 달만 틀 게 아니다. 전국의 모든 상영관에서 사시사철 틀기를 희망한다.

적극 지지한다. ‘대한늬우스-4대강 살리기’를 프로듀싱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왕 내디딘 걸음, 중단없이 마구 내달리기를 기대한다.

개그콘서트의 코너인 ‘대화가 필요해’를 패러디한다고 하지 않는가. 코믹 버전으로 정부정책을 홍보한다고 하지 않는가. ‘대한늬우스’ 말미를 ‘대화가 필요해’라는 노래로 장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잖아도 대화가 필요했다. 사실상의 대운하사업 아니냐는 국민 비판이 비등했지만 한사코 들으려 하지 않던 정부였다. 진보언론은 물론이고 보수언론인 ‘조선일보’까지 나서 비판했지만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던 정부였다. 누가 뭐라 하건 ‘못 먹어도 고’를 외치던 정부였다.

그래서 노이즈 마케팅이 필요했다.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아집을 보이는 정부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국민이 한 목소리로 ‘중단’을 명령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국민의 시선을 ‘4대강 살리기’에 모아야 했다.

이 엄청난 과제를 정부가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4대강 살리기’ 논쟁을 공론의 장에서 사적 휴식의 장으로까지 확신시키기로 작정한 것이다. ‘4대강 살리기’ 논쟁을 경향각지 남녀노소에 전파하기로 작심한 것이다. 이러니 어찌 고맙지 아니 하고 어찌 찬성하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해 국민을 세뇌시키려 한다는 우려는 집어던져도 된다. 그건 70년대 박정희 시대에서나 먹힐 수 있는 얘기다. 매체가 소수였고 논조가 천편일률적일 때의 얘기다. 보도지침이 횡행하던 80년대 전두환 시대에도 세뇌는 먹히지 않았다.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개사돼 정권 비판용 노래로 애용된 사례가 증명한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기 어렵다. 다매체 시대다. 패러디가 성행하는 시대다. 게다가 공론 영역에서의 논조는 ‘4대강 살리기’ 반대쪽으로 흐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뭐가 무서워 ‘대한늬우스’의 세뇌효과를 우려한단 말인가. 그건 기우다.

거듭 밝힌다. ‘대한늬우스-4대강 살리기’는 1탄으로 끝낼 게 아니다. 시즌 2, 시즌 3으로 연속 제작해 방방곡곡에서 트는 게 좋다.

정부가 판을 벌렸으니 염치 불구하고 주문을 추가하자. 극장에 지급하는 광고비를 2억원만 책정할 게 아니다. 거기에 0 하나를 더 붙여도 좋다.

혹시 모른다. 그러면 영화 관람료를 1천원 인상하려던 극장주가 ‘부수입 대박’이 기쁜 나머지 관람료 인상 움직임을 철회할지 모른다. 그럼 좋다. 국민은 님도 보고 뽕도 딴다.

▲사진=‘대한늬우스-4대강 살리기’의 홍보영상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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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언행이 상당히 어지럽다. 이쪽 다르고 저쪽 다르다. 강공을 펼치는가 하면 유화 제스처를 보인다. 한나라당은 단독 국회를 소집해 미디어법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청와대는 7·8월 개각설을 흘리며 중도강화·사회통합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아니다. 어지럽게 보이는 건 파편만 보기 때문이다. 파편을 단계별로 배열하면 새로운 게 보인다. 여권의 전략, 여권의 스케줄이다.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면 얼추 끝난다. 1년 가까이 끌어온 ‘MB입법’을 마무리한다. 그러면 새 출발을 선포할 수 있다. 개각을 터닝 포인트 삼아 중도강화·사회통합을 선언할 수 있다. 9월 정기국회 때부터는 경제에 매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면모를 선보일 수 있다.

믿는 구석이 있다.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 지난 15일 라디오 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터널 끝에 희미하나마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했다. 바로 이런 낙관이 중도강화·사회통합·친서민정책을 장담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용쓰는 것이다. 미디어법이라는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을 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도층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솔하면 여권을 외면했던 그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뿐인가? 미디어법만 처리하면 민주당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민주당이 외곽세력들로부터 ‘무능 정당’ ‘허약 정당’이란 질타를 당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고, 반MB연대전선을 교란시킬 수 있다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10월 재보선에서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고, 그것이 여권 내 자중지란 요인을 거세하고 MB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론 낙관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만약의 경우에도 대비한다. 미디어법 처리 이후 역풍이 불 것에 대비해 사전·사후 방책을 모색한다.

사전 방책은 ‘당근’이다. 미디어법을 처리하되 일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방법이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 해제 시점을 2013년 이후로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타협적 면모를 보임으로써 역풍의 강도를 떨어뜨리려 한다.

사후 방책은 ‘법치’다. 미디어법 처리에 반발한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엄정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는 방법이다. 청와대가 사회통합을 부르짖으면서도 한편으론 질서와 원칙을 강조하고, 공안통을 검찰총장으로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비타협적 면모를 보임으로써 역풍에 맞바람을 놓으려 한다.

여권의 전략이 이렇다. 시간표가 짜여 있고 질서가 잡혀 있다. 선후 관계가 분명하고 당청의 역할분담이 뚜렷하다.

하지만 허약하고 위태롭다.

하나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질 정도로 ‘올인’하는 전략이기에 그렇다. 미디어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만사가 공염불이 될 전략이기에 그렇다.

하나를 주면 열을 얻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전략이기에 그렇다. 지표 경제를 살리면 민생이 체감하며 민심이 감동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전략이기에 그렇다.

▲사진=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단독 국회 소집에 반발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하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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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맞다. “사회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맞다. 중요한 건 구호가 아니라 행동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점은 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강화’를 외치고 ‘친서민 정책’을 부르짖지만 그것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은 안다.

그 예가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다. 서민들에게 무보증으로 소액을 대출해주는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에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꼽았던 사업이다. 이 사업의 실태가 이렇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주장했다. 희망제작소가 하나은행과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같은 후원사업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어느 날 무산됐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정원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펄쩍 뛰었지만 박원순 상임이사는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추정할 수 있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주장이 맞다면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정책을 앞장서 펴는 게 아니라 서민을 위해 차려진 밥상마저 엎어버린 셈이 된다. 단 돈 천원이 아쉬운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돈줄을 끊어버린 셈이 된다.

물론 추정일 뿐이다. 국정원이 아니라고 펄쩍 뛰니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른 사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실태를 엿볼 수 있는 다른 창이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결정했다. ‘희망키움뱅크’ 사업 수행기관을 선정하면서 사회연대은행을 탈락시켰다. 2005년부터 소액대출사업을 벌여온 ‘원조’를 빼버렸다. 그 대신 지난해 11월,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지낸 김진홍 목사가 주도해 설립한 민생정책경제연구소 등을 수행기관으로 선정했다. 노하우와 인프라가 구축된 단체는 빼고 경험과 실적이 전무한 단체, 그것도 보건복지가족부 스스로 ‘전단팀 미비 및 인건비 과다책정’ 문제점을 지적한 단체를 끼워넣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중도실용이 뭔가. 색안경 끼지 않고 현실에 기초해 성과를 추구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런 ‘중도’ 이명박 정부가 실용의 길을 저버렸다. 사업토대를 보지 않았고 사업실적을 살피지 않았다.

실태가 이러하니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결론을 낼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는 말, 즉 “사회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청와대에 되돌려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끌어낼 수가 없다.

▲사진=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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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진단은 명료하다. 문제의 근원을 이미지에서 찾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좌파들의 집요한 이념공세로 인해 마치 극우주의자인 것처럼 이미지가 왜곡돼 있다”고 보고, “이명박 대통령은 애초 비주류, 중도실용주의자였으나 대통령이 된 뒤 정당·이념 대립구도 속에서 오른쪽으로 비치게 됐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근원적 처방’을 이미지 개선에 맞춘다. ‘MB다움의 회복’ ‘중도 이미지 회복’을 위해 종교계·언론계와 같은 여론주도층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각종 소외현장을 찾아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늘린다고 한다.

사족 같지만 오해의 소지를 한 점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풀자. 그럼 이런 얘기가 된다.

청와대의 진단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잘못 한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곧 비주류·중도실용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한 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권 인사들이 흔히 하는 말로 국민이 ‘오해’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진단에 따르면 정책기조는 잘못 된 게 없다. 이명박 정부는 줄곧 중도실용노선에 입각해 서민을 보듬는 정책을 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한 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이 좌파들의 이념공세에 의해 각색됐기 때문이다.

복습까지 마치고 나니까 눈이 좀 트인다.

청와대는 단정한다.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소통길에 문제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 길이 포장도로가 아니라 자갈길이어서 소통이 덜컹거렸다고 확신한다.

그래서인가 보다.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려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악의적 선동세력’에 점령된 방송을 구해낸 다음에 소통의 간선도로를 구축하려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보다. 서울시가 나서서 서울광장의 사용규정을 강화하고, 8월 1일에 개장하는 광화문광장의 사용여지를 틀어막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길거리 선동을 일삼는 좌파세력을 밀어낸 다음에 소통의 광장을 열려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보다. 엄연히 국회가 있는데도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것을 만들려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정쟁만 일삼는 정당에 점령돼 상습 병목 현상을 보이는 국회 대신 별도의 소통 직행노선을 닦으려는가 보다.

말하지 말자. ‘악의적 선동방송’보다 ‘우호적 홍보언론’이 더 많고 더 세지 않았냐고 되묻지 말자. 좌파 세력의 길거리 선동보다 우파 세력의 길거리 구호가 더 우렁차지 않았냐고 셈하지 말자. 국회의사당이 병목구간이 된 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과속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따지지 말자.

국정쇄신 하랬더니 홍보쇄신에 나서는 청와대다. 소통 하랬더니 소탕을 꾀하는 청와대다. 더 무슨 말을 하고, 더 무슨 말을 듣겠는가. 청와대를 향한 소통(길)이 꽉 막혀 있는데….

 ▲사진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